내연기관차 힘 실을 트럼프
미국-글로벌 시장 위축 전망
신흥시장 주도권 가져온 中
가격경쟁력으로 영향력 키울 듯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이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에 빠진 세계 전기차 시장에 또 한 번 충격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전기차 보조금을 폐지하고 화석연료와 내연기관차에 다시금 힘을 싣겠다는 의중을 꾸준히 밝혀 왔다. 문제는 정책 변화가 미국 전기차 시장을 더욱 위축시키고, 신흥시장 내 중국 전기차의 영향력을 키우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 대선 이후 전기차 시장에 대해 조망한 DBR(동아비즈니스리뷰) 2024년 12월 1호(406호) 아티클을 요약해 소개한다.
● 숨 고르는 글로벌 전기차 시장
이미 세계 전기차 시장은 성장세 둔화로 캐즘에 빠졌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었다. 캐즘은 혁신 기술 제품이 도입되는 초기엔 신기술 선호도가 높은 소비자를 중심으로 빠르게 소비되다가, 실용적인 일반 대중으로 핵심 소비자가 전환되는 과정에서 소비 증가세가 위축되는 현상을 뜻한다. 실제로 전기차-배터리 시장조사업체 EV볼륨에 따르면 2023년 세계 전기차 판매량은 1419만 대로 전년 대비 35% 늘었다. 2022년 55%, 2021년 109%와 비교하면 확연히 증가세가 꺾였다. 올 상반기 실적을 토대로 추정한 올해 판매량은 1649만 대다. 전년 대비 증가율이 16%에 그친다. 특히 전기차 가운데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를 제외한 배터리 전기차(BEV)의 판매 증가율은 10%를 밑돌 것으로 예상됐다.
조 바이든 정부의 강력한 지원 정책으로 빠른 성장이 기대됐던 미국 전기차 시장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PwC에 따르면 2024년 1∼9월 미국의 BEV 판매 증가율은 17.9%, PHEV 판매 증가율은 4.4%에 그쳤다. 전체 자동차 판매에서 BEV, PHEV가 차지하는 비중(점유율)은 각각 7.7%, 1.7%에 불과했다.
● 신흥시장 주도권 가져온 중국
중국은 2023년 958만7000여 대의 전기차를 생산했다. 829만2000여 대를 국내에서 판매하고, 120만3000여 대를 수출했다. 중국의 생산량은 세계 전체 전기차 판매량의 67.5%에 달한다. 올해도 중국 전기차 생산은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어 세계 시장 비중이 더 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후발국 시장에선 중국 전기차의 지배력이 절대적이다. 대표적인 국가가 태국이다. 태국은 2023년 이미 전체 자동차 판매에서 전기차 비중이 9%를 넘어설 만큼 전기차 보급이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 보급되는 전기차의 84.2%는 중국 브랜드, 나머지 비중은 중국에서 생산해 공급하는 테슬라 전기차다. 사실상 중국 손을 거치지 않은 전기차가 없다는 얘기다. 세계 전기차 판매 실적을 살펴봐도 중국의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국 전기차 전문매체 클린 테크니카에 따르면 올해 1∼9월 주요 전기차 브랜드 중 가장 높은 판매량을 기록한 업체는 총 260만7970대를 기록한 중국 BYD다. 2위 테슬라(129만1279대)보다 두 배 이상으로 판매했다. 판매량 기준 세계 10대 전기차 업체에선 6개, 20대 업체에선 11개가 중국 업체였다.
● 트럼프의 중국 견제와 한계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전기차에 힘을 실었던 바이든 대통령과 달리 트럼프 당선인은 전기차 정책을 전면 수정할 것으로 보인다. 기후변화 대응이나 탄소중립 목표를 부정적으로 보는 데다, 전기차 산업 자체가 미국의 자동차 산업과 경제에 불리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트럼프 당선인은 환경보호청장(EPA)에 화석연료를 규제하는 정책을 철폐하겠다는 리 젤딘 전 하원의원을 지명하기로 했다. 전기차에 유리한 규제를 없애고 내연기관 자동차를 다시 활성화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볼 수 있다. 전기차 관련 구매 보조금이 폐지되지 않더라도, 규모를 대폭 축소하거나 수급 요건을 까다롭게 바꿀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우회 수출이다. 이미 중국은 다른 상품에 대해선 멕시코와 동남아를 우회 수출 기지로 활용하고 있다. 전기차 영역에서도 이처럼 우회 전략을 택할 수 있다. 실제로 BYD 등 중국 기업들은 멕시코 공장 건설을 고려하고 있다. 중국산 부품을 대규모로 사용한 멕시코산 전기차가 미국에 입성할 수 있다는 의미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공급망 규제에 오히려 구멍이 뚫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보조금 규정을 통해 중국의 광물, 부품 등이 들어간 전기차를 배제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하지만 전기차 보조금 정책이 사라질 경우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기 어렵게 된다. 어떤 형태로든 중국산 혹은 중국 기업이 생산한 소재와 부품이 미국 전기차에 들어가는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 시장 위축 속 중국 영향력 커질 듯
트럼프 당선인의 정책은 미국의 전기차 시장을 크게 위축시킬 가능성이 높다. 화석연료 비용 하락과 전기차 보조금 축소는 소비자들의 전기차 선호도를 더욱 떨어뜨릴 것으로 보인다. 미국 시장의 부진은 세계 시장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탄소중립 노력은 일시적으로 후퇴하더라도 포기할 수 없는 과제다.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전기차인 만큼 중장기적인 전환은 지속될 것이다.
이 와중에 중국 전기차의 영향력은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 세계 시장에서 중국 전기차는 높은 가격 경쟁력으로 세계 시장을 위협해 왔다. 미국, 유럽에서 중국산 전기차에 대해 관세 장벽을 세우면서 강한 견제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압도적인 가격 경쟁력을 고려하면 시장 침투를 막기는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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