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련된’ 스포츠로 돌아온 요즘 당구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2월 31일 03시 00분


깔끔한 인테리어와 다양한 부대시설을 갖춘 프리미엄 당구장의 등장과 PBA 투어의 인기

PBA에서 ‘10대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당구 천재 김영원 선수, PBA 제공
과거 당구장의 이미지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았다. 담배 연기가 자욱하고 성인 남성들만 모인 공간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영화에서는 종종 비행 청소년들의 아지트나 범인의 은신처, 패싸움의 무대로 등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당구장의 분위기는 2017년 12월 ‘당구클럽 금연법’ 시행 이후 크게 달라졌다. 담배 연기가 사라지면서 환경이 쾌적해졌고, 당구에 대한 인식이 불량 학생이나 성인 남성의 놀이에서 벗어나 전 세대가 즐기는 생활 스포츠로 바뀌기 시작했다. 게다가 당구는 두뇌 활동과 집중력을 요구하는 스포츠로 재조명받으면서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수업으로 채택되기도 했다. 여성 당구 인구도 꾸준히 증가했다. 이제는 아버지와 아들, 부부나 연인 등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건강한 여가 문화로 사랑받고 있다.

국내 당구 인구는 1000만 명으로 추정된다. 전국의 당구장은 1만5746곳(2021년 문화체육관광부 통계)에 이른다. 이처럼 당구장은 동네 어디서든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과거 전통적인 분위기의 당구장은 점차 문을 닫고 있지만, 최근 세련된 인테리어와 다양한 부대시설을 갖춘 프리미엄 당구장이 늘고 있다.

먼저 스리쿠션 전용 국제 규격 당구대(대대 테이블)의 보편화로 당구장은 대형화되고 쾌적해졌다. 첨단 기술을 적용한 새로운 시설도 관심을 끈다. 스코어 계산 방식은 아날로그 주판대에서 터치식 디지털 스코어보드로 바뀌었고, 카메라를 설치해 경기 장면을 녹화하거나 다시 볼 수도 있다. 당구장에 설치된 단말기와 스마트폰을 연동하면 경기 영상 다시 보기는 물론, 부분 확대 기능을 통해 정확한 영상 판독 및 경기 분석도 가능하다. 한 당구 프랜차이즈업체는 AI 분석 시스템을 도입해 경기의 성공과 실패 이력 등을 분석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당구장의 변화는 음식 문화에도 영향을 줬다. 전문 카페 수준의 음료 메뉴와 트렌디한 스낵바를 갖춘 곳이 많다. 탁구채나 골프채처럼 개인 큐대를 지참하는 인구도 늘었다. 최근에는 무인 당구장도 등장했다. 무인 당구장은 24시간 운영되기 때문에 접근성이 뛰어나며, 업주 입장에서는 인건비 절감과 운영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으로 꼽힌다. 특히 MZ세대 사이에 익숙한 비대면 환경과 저렴한 가격은 인기 요인으로 꼽힌다.

김구라와 이광기가 운영하는 ‘당구라’(위)와 개그맨 이수근의 ‘이수근채널’ 등 당구 관련 콘텐츠도 인기다.
김구라와 이광기가 운영하는 ‘당구라’(위)와 개그맨 이수근의 ‘이수근채널’ 등 당구 관련 콘텐츠도 인기다.
당구도 유튜브로 즐긴다

당구에 대한 관심은 유튜브 콘텐츠에서도 두드러진다. 연예인이 운영하는 당구 전문 유튜브 채널이 늘어나면서 당구 대중화를 이끌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이수근채널’이다. 만능 스포츠맨으로 알려진 이수근은 연예인 고수들과 전국의 스포츠 고수들에게 도전하는 콘셉트로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채널에는 연예계 대표 당구 고수인 신동엽, 정준하, 강호동, 임창정 등이 출연해 실력을 뽐낸 바 있다. ‘당구 황제’ 프레드릭 쿠드롱과 서현민, 김가영, 차유람 등 유명 당구 선수들까지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개그맨 김구라와 배우 이광기가 함께 운영하는 당구 채널 ‘당구라’도 있다. 연예계 대표 절친이자 ‘당구러’로 잘 알려진 두 사람은 연예인과 프로 당구 선수 등을 게스트로 초대해 경기를 펼친다. 두 사람의 입담과 케미가 더해져 보는 재미가 쏠솔하다. 또한 전국 당구장을 방문해 ‘재야의 고수’들과 대결을 펼치는 등 다양한 콘텐츠로 호응을 얻고 있다.

이 밖에도 당구의 가장 기초적 규칙부터 고급 기술까지 폭넓은 지식을 전달하는 ‘아이빌리TV’, 당구 전문 스포츠 채널 빌리어즈TV의 공식 유튜브 채널 ‘빌리어즈TV’ 등도 인기 당구 채널로 꼽힌다.

2030년 아시안게임 정식종목 채택

프로 당구 대회의 증가와 당구 전문 TV 채널의 등장도 당구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반영한다. 국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대회는 프로당구협회에서 주관하는 PBA 투어다. 2019년 출범한 PBA 투어는 우리나라에서 시작된 프로 당구 리그다. PBA는 기존의 아마추어 대회와 국제 대회와는 차별화된 상업적인 프로스포츠 리그를 지향한다. 특히 스리쿠션 종목을 중심으로 운영되며, 최대 1억 원에 달하는 상금과 국내외 유명 선수들의 참가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프레드릭 쿠드롱, 에디 멕스 등 글로벌 스타들이 대거 참여하며 국제적인 리그로 자리 잡았다. PBA 투어는 시즌제로 운영되며, 남녀 각각의 개인전과 팀 리그로 나뉜다. 특히 세트제를 도입해 기존 대회와의 차별화를 꾀했다.

당구는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이후 20년 만인 2030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정식종목으로 부활할 예정이다.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처음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당구는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까지 정식종목으로 치러졌다. 그러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부터 종목에서 제외됐는데 2030년 부활 예정이라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최근 당구의 인기에는 젊은 선수들과 여성 선수들의 활약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2007년생 ‘당구 천재’ 김영원 선수는 2024년 NH농협카드 PBA 챔피언십에서 최연소 우승하며 ‘사상 첫 10대 우승자’ 타이틀을 획득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를 따라 당구를 시작한 김영원은 각종 유소년 당구 대회를 휩쓸며 주목받았다. 고등학교 진학 대신 프로 당구 선수의 길을 택해 2022~2023 시즌 3부 대회인 챌린지 투어로 프로에 데뷔한 이래 2024년 1부 리그에 진입해 승승장구하고 있다. ‘당구 여제’ 김가영, ‘얼음 공주’ 한지은 선수를 중심으로 차유람, 김민아, 김보미 등도 인기를 얻고 있다. 특히 김가영은 올 시즌 3차 투어인 하노이 오픈부터 최근 7차 투어까지 5회 연속 우승을 달성하며 30연승을 이뤘다. 이들은 젊은 세대에게 당구의 매력을 알리는 데 기여하고 있다. 캄보디아 출신으로 2011년 한국인 남편과 결혼 후 큐대를 잡은 ‘당구 퀸’ 스롱 피아비는 한국에서의 인기에 힘입어 모국에서도 스포츠 영웅으로 사랑받고 있다.

초심자라면 포켓볼부터

당구가 처음이라면 포켓볼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 포켓볼은 당구에 비해 간단한 규칙과 목표 덕분에 입문하기 좋은 운동이다. 포켓볼로 공을 맞히는 연습을 충분히 한 뒤 스리쿠션 당구에 도전해도 늦지 않는다. 최근 많은 당구장에서 초보자를 위한 당구 강습이 이뤄지고 있다. 입문 강좌를 통해 자세, 샷 방법, 규칙 등 기본기를 배우면 더 쉽게 당구를 즐길 수 있다. 또 다양한 유튜브 채널을 활용하면 당구에 대한 흥미를 키우면서 지식도 쌓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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