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정국으로 인한 혼란이 이어지면서 산업계 숙원 법안이었던 ‘반도체 특별법’을 비롯한 경제 분야 주요 법안의 국회 연내 통과가 무산됐다. 이들 법안의 상당수는 여야가 필요성을 인정해 공통 발의한 이른바 ‘무쟁점 법안’이었지만 국회 소위원회 문턱도 넘지 못했다. 재계는 내년 1월 임시국회를 열고 이들 민생법안부터 먼저 처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 끝내 해 넘긴 반도체 특별법
30일 재계에 따르면 반도체 특별법이 관련 소위 심사도 마무리하지 못해 결국 연내 처리가 어려워진 것으로 파악됐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26일 산업통상자원특허소위원회를 열었으나 반도체 특별법 심사 전에 국민의힘 의원총회와 본회의 일정 등으로 산회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삼성전자 등 국내외 주요 반도체 기업의 4분기(10∼12월) 시장 전망치가 줄줄이 하락하는 ‘반도체 겨울’을 앞두고 있는데 여기에 대비할 특별법 통과도 무산된 것이다.
반도체 특별법은 반도체 기업에 직접 보조금을 지원하는 게 골자다. 반도체 시설투자에 정부가 조 단위 보조금을 지원하는 미국, 대만, 일본 등 주요국과 달리 한국은 직접 보조금 없이 세액공제 혜택만 지원하고 있다. 현재 국내 반도체 관련 인센티브는 세액공제를 최대로 포함한다고 해도 일본의 10분의 1, 미국의 5분의 1 수준에 그친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업계는 수년을 내다보고 조 단위 투자를 해야 하는데 당장 지난해 영업손실로 세액공제 혜택조차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당초 반도체 특별법은 여야가 모두 발의하고 국민의힘이 당론으로 지정하는 등 특별법 도입 필요성에 공감대를 이뤘다. 하지만 여당에서 ‘고소득 연구개발(R&D) 직군 주 52시간 규제 적용 예외’ 조항을 추가하면서 시각차가 이어지다가 끝내 통과가 미뤄졌다. 산자위 위원들은 해당 부분 관련 논의를 다음 소위에서 재개하기로 했지만 현재로선 향후 일정조차 불투명한 상황이다. 업계에선 “대만 TSMC를 넘어 중국 경쟁사들까지 한국 기업들을 위협하는 상황인 만큼 업계와 좀 더 긴밀히 소통해 이견의 간극을 좁혀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 “정쟁으로 민생법안 미뤄져… 임시국회서 최우선돼야”
반도체 특별법 외에도 올해 10월 제22대 국회 첫 정기국회의 본격적인 법안 심사를 앞두고 재계가 건의한 경제 분야 입법과제 23개 중 여야 모두가 법안을 발의했던 12개 무쟁점 법안 대부분이 사실상 올해 통과가 무산됐다. 국가인공지능위원회 설치와 기본 계획 수립 등을 명시한 인공지능(AI) 기본법만 26일 본회의를 통과하고 나머지는 소위 문턱을 넘지 못했다.
해를 넘기게 된 주요 무쟁점 법안들은 △반도체 특별법 △첨단 전략산업 기금법 △형법 개정안(국가핵심기술 부정 유출 시 처벌 강화) △전력망 확충 특별법 △외국인 근로자 고용법 개정안 등이다. 앞서 이달 15일 긴급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반도체특별법 등 우리 산업의 향후 운명을 결정지을 법안들이 연내에 최대한 처리될 수 있도록 산업계의 목소리를 정성껏 국회에 설명드리겠다”고 했으나 결국 해를 넘기게 됐다.
김문태 대한상공회의소 산업정책팀장은 “국회법상 1월은 임시국회가 열리지 않는 시기지만 그동안 정국 불안정으로 미뤄진 민생법안들이 많은 만큼 연초 임시국회를 열어 여야 공통으로 발의된 이견 없는 법안들이라도 우선 통과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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