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아파트 단지 내 상가 소유자가 재건축에 참여하도록 하는 장치인 아파트 입주권 보장 조항이 중대한 위기 국면을 맞았다. 최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상가 소유자가 자유롭게 아파트 입주권을 선택할 수 있으려면 조합원 전원 동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는 상가 소유자에게 아파트 입주권을 보장하는 것이 보편화한 서울 강남권 재건축 조합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먼저 상가 소유자가 아파트 입주권을 받는 과정을 살펴보자. 편의상 기존 상가 가치가 1억 원이고 새로 짓는 아파트 단지에서 최소 규모인 아파트 가액이 2억 원이라고 해보자. 법령에서는 상가 소유자가 아파트 입주권을 받으려면 기존 상가 가액에 ‘정관에서 정하는 비율’을 곱한 금액이 최소 규모 신축 아파트 가액보다 커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관으로 구체적 비율을 정하지 않으면 1로 본다.
따라서 앞서 거론한 상가 소유자가 속한 재건축 조합에서 정관으로 정하는 비율이 1이라면 아파트 입주권을 받을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재건축 정비 계획상 상가를 짓지 않더라도 상가 소유자는 아파트 입주권을 받지 못한다.
재건축 조합은 정관에서 정하는 비율을 1보다 낮춰 이 문제를 해결해 왔다. 앞선 예시에서 정관으로 정하는 비율을 0.1로 해보자. 기존 상가 가액 1억 원이 최소 규모 신축 아파트 가액 2억 원에 정관상 비율을 곱한 금액인 2000만 원보다 커진다. 따라서 이 상가 소유자는 아파트 입주권을 받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정관상 비율을 1보다 작게 하는 내용의 정관 개정이나 총회 의결에는 조합원 전원 동의가 필요하다고 해석했다. 법령은 상가 공급이 아예 불가능하거나, 상가를 공급하는 것만으로는 상가 소유자에게 참을 수 없는 불합리를 강요하는 결과가 될 때만 예외적으로 아파트를 공급할 수 있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비업계에서는 이번 판결이 상가 소유자가 아파트 입주권을 받는 관행에 ‘조종(弔鐘)’을 울린 것으로 보고 있다. 조합원 전원 동의를 받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상가 소유자 선택에 따라 아파트 입주권을 부여하려면 조합원 전원 동의가 필요하다는 법원 해석은 흠잡을 데 없이 타당하다. 하지만 보충적 수치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해 무리한 법리를 도출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재건축 법령 자체가 구체적 비율을 정관으로 정할 수 있도록 하고 정관에서 정하지 않는 경우만 1로 보도록 하기 때문이다. 이를 다르게 규정하려면 조합원 전원 동의가 필요하다는 해석은 선후 관계가 바뀌었다고 본다.
조합 측 대응도 아쉽다. ‘관행적으로 늘 그랬다’는 조합 측 항변은 무력하기 짝이 없다. 상가 소유자와 합의가 있었다거나, 상가 소유자에게 아파트 입주권을 주지 않으면 사업 진행이 어려워 전체 조합원에게 손해라는 등 판에 박힌 레퍼토리다.
어려운 사정을 봐달라는 읍소만으로는 법원을 설득하기 어렵다. 상가 소유자에게 아파트 입주권을 부여하는 조치가 왜 불가피하며 또 법리적으로도 타당한 것인지를 철저히 논증해야 한다. 그제야 적정한 법원 판단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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