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 없인 살 수 없다는 사람들, 아마 많을 겁니다. 극히 일부 지역에서만 생산되기 때문에 한국을 포함한 상당수 국가는 수입에 의존하죠. 그 생산 현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만 1억2500만명에 달합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거래되는 무역상품인 검은 빛의 원자재. 석유냐고요? 아니요. 바로 커피입니다.
글로벌 커피 가격이 급등했다는 소식, 들어보셨나요. 뉴욕 국제상품거래소(ICE) 기준 커피 원두 가격은 지난 1년 동안 72% 뛰었죠. 2024년 12월엔 사상 최고치인 파운드(0.45㎏)당 3.49달러를 기록했고요.
이게 다 극심한 기후변화 탓이란 분석과 함께 ‘이러다 커피가 사치품이 되겠다’는 걱정이 이어집니다. 그럼 정말 커피 가격은 이대로 계속 오르기만 할까요. 커피 가격의 지난 50년 추이 그래프가 말해주는 이야기는 좀 다른데요. 오늘은 치솟는 커피 가격을 들여다보겠습니다.
글로벌 커피 업계엔 이런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브라질이 재채기하면 커피 세계가 감기에 걸린다.’ 세계 커피 생산량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최대 생산국 브라질 작황이 그만큼 커피 가격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단 뜻이죠.
이는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왜 지금 커피 가격이 이렇게 뛰었을까요. 브라질이 재채기를 아주 세게 했기 때문입니다. 언제? 2021년에요.
2021년 7월 20일 아침, 커피 업계를 떨게 하는 소식이 나왔습니다. 밤사이 브라질 주요 커피 농장 지역에 ‘검은 서리’가 닥친 겁니다.
6~8월 브라질은 겨울이고, 아라비카 커피가 주로 자라는 고산지대엔 때론 한파가 닥쳐서 서리가 내리기도 하죠. 대부분은 잎과 열매만 어는 정도의 약한 서리(=하얀 서리)에 그치는데요.
검은 서리는 커피나무의 줄기와 뿌리까지 죄다 얼려버려서 죽게 만드는 훨씬 강한 서리를 말합니다. 검은 서리가 들이치면 하룻밤 만에 농장이 초토화되죠. 커피나무가 타버린 듯 검게 변해 죽기 때문에, 베어내고 새 묘목을 심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 무서운 일이 2021년 닥친 겁니다. 브라질 전체 커피 생산량의 10%를 단숨에 날려버리는 사건이었죠. 그 결과 2021년 한해 국제 커피 가격은 100% 가까이 뛰었습니다.
3년 반 전에 내린 검은 서리가 지금의 커피 가격과 무슨 상관이냐고요? 검은 서리가 내리면 그 피해는 몇 년에 걸쳐 이어지는 법입니다. 오히려 피해가 점점 커지는 경향도 있죠. 서리 첫해엔 보통 전년도까지 쌓아뒀던 재고 물량이 아직 남아있으니 시장이 어느 정도는 버팁니다. 문제는 한번 검은 서리의 습격을 받았던 지역에 곧이어 또 서리가 닥치곤 한다는 건데요.
커피나무는 새 묘목을 심어 열매를 수확하기까지 3~4년이 걸립니다. 어린 커피나무는 줄기와 가지가 가늘기 때문에 서리에 더 취약하죠. 그래서 크고 튼튼한 나무라면 버틸 만한 서리에도 작은 나무는 바로 얼어 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2024년 8월 바로 이런 일이 발생했죠. 2021년 검은 서리보단 훨씬 약한, 하지만 어린나무엔 여전히 치명적인 서리가 닥친 겁니다.
2021년과 2024년 연이어 서리 피해를 입은 브라질의 커피 농장주는 이렇게 말합니다. “2021년 나무의 90%가 손상됐고, 그중 60%는 다시 심어서 회복했습니다. 이제 막 생산을 시작하려던 때 다시 서리에 맞았어요. 이걸 또다시 재식재할 용기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브라질 전 지역에 2024년 극심한 가뭄까지 닥쳤습니다. 3년 전 서리로 이미 약해진 커피나무에 가뭄 스트레스까지 겹치면서 수확량을 더 줄였죠. 브라질 정부 산하 기관인 CONAB는 2024년 커피 수확량을 전년보다 0.5% 감소한 5479만 포대로 추정합니다. 4년 연속 흉작이죠. 6000만~6400만 포대를 거뜬히 수확했던 이전 풍작 시기와 차이가 큽니다.
커피값 이상급등의 배후
지구온난화 같은 기후 변화는 분명 커피 산업에 상존하는 위험 요인입니다. 커피나무, 특히 향미가 풍부하고 고급으로 평가받는 아라비카 커피는 키우는 조건이 상당히 까다롭습니다. 18~22도의 덥지 않고 온화한 기온이어야 잘 자라죠. 열대지역에서도 해발 600m 이상 고지대에서 주로 자라는데요.
지구 온도가 꾸준히 상승하면서 이 조건에 맞는 고도와 위도가 갈수록 높아져만 갑니다. 2050년이 되면 현재의 아라비카 커피 재배지의 50%는 너무 더워서 계속 재배하기엔 부적합해질 거라는 연구 결과가 나와 있죠. 마치 요즘 사과가 대구가 아닌 강원도에서 잘 자라고, 유럽의 와인 재배지가 점점 북쪽으로 올라가는 것과 비슷한 현상입니다. 이미 기후변화를 실감하는 커피 농장의 고민은 큽니다. 수십 년 동안 일궈온 터전을 옮기기란 말처럼 쉽지 않으니까요.
그럼 브라질 커피농장을 초토화하고, 글로벌 커피 시장을 요동치게 만드는 검은 서리 현상. 이것도 최근의 기후 변화 탓일까요?
솔직히 그렇게 말하긴 좀 애매합니다. 왜냐고요? 이 기후 현상은 새롭게 나타난 게 아닙니다. 이미 2세기 넘게 브라질 커피 재배에 있어 재앙적 존재였죠. 브라질의 상업적 커피 재배 초기인 1822년에도 검은 서리가 브라질 중남부를 덮쳐 큰 피해를 줬단 기록이 있고요. 그동안 20여 차례에 걸쳐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특히 현대에 들어와서 파괴적 손실을 입힌 건 1975년과 1994년, 그리고 2021년이었죠.
이러한 브라질의 서리 피해는 쌍으로 연이어 발생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1975년과 1978년, 1994년과 1995년, 2021년과 2024년. 이렇게 말이죠. 그리고 이는 지난 50여년간 커피 가격 그래프 중 상당 부분을 설명해 줍니다.
가격 그래프를 보면 뾰족한 봉우리가 주기적으로 나타난다는 걸 알 수 있는데요. 이 중 빨간 원으로 표시한 부분이 바로 브라질 검은 서리의 여파를 보여주는 시기입니다. 크고 작은 봉우리가 연이어 나타나죠. (참고로 초록색 부분은 브라질을 포함한 중남미에 닥친 가뭄이 가격 급등의 주요 원인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말하려는 건 이겁니다. 커피는 어디까지나 농산물이라는 거죠. 변덕스러운 자연에 따라 수확량이 급변하는 농산물이요. 그렇기에 때론 흉작으로 가격이 단기간 급등하는 일은 주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치 요즘 배춧값, 딸기값처럼 말이죠.
농산물 가격이 널뛰는 이유
커피도 농산물이다. 이런 당연한 말을 왜 하느냐고요? 그걸 간과하면 자칫 엉뚱한 데 분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975년 7월 브라질엔 역사상 최악의 검은 서리가 닥쳤습니다. 순식간에 브라질 커피농장의 절반 이상이 폐허가 되고, 10억 그루의 나무가 죽어버렸죠. 그 여파로 커피 가격이 이후 47년 동안 깨지지 않을 최고가(3.39달러)까지 치솟았던 1977년 초. 뉴욕타임스의 유명 칼럼니스트였던 윌리엄 세이파이어는 이런 제목의 칼럼을 썼습니다. ‘브라질의 커피 사기’. “날씨는 변명일 뿐”이고 브라질 정권이 시장 조작으로 “커피에 중독된 멍청한 미국인들”에게 바가지를 씌우고 있다며, 미국인은 커피를 보이콧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지금 보면 커피가 농산물이란 기본 사실을 무시한 다소 황당한 주장인데요. 이게 당시 미국 소비자들의 정서였던 겁니다. 과연 2025년의 소비자는 그때와 다를 수 있을까요.
커피는 농산물이기 때문에 다른 작물과 마찬가지로 가격에 따른 쏠림현상이 심합니다. 예컨대 우리나라에서도 어떤 해에 양팟값이 뛰면, 이듬해엔 농부들이 양파를 왕창 심는 바람에 어김없이 값이 급락하곤 하잖아요. 커피 농사도 이와 똑같은 일이 되풀이됩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커피 생두 가격이 뛰면, 전 세계적으로 커피 재배가 늘어나죠. 커피는 양파·마늘과는 달리 심어서 수확까지 시간이 꽤 걸리다 보니, 실제 수확량이 확 늘어나는 건 몇 년 뒤입니다. 그럼 그때 가선 커피 시장이 심각한 공급 과잉에 시달리게 되죠.
그래프를 다시 보자면 커피 가격이 파운드당 1달러 아래로 떨어진 깊은 골짜기가 주기적으로 등장하는데요. 그게 바로 커피 시장 공급 과잉이 절정이었던 구간입니다. 여러분은 모른 채 지나갔겠지만, 2019년도 그랬죠. 당시 인건비도 못 건질 정도로 가격이 폭락하면서 일부 중남미 국가에선 커피 대신 코카 잎(코카인 원료)을 키우는 농장이 늘어나 골치였을 정도였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공급 과잉이 너무 심해서 ‘커피 농사 때려치운다’는 아우성이 나올 때쯤이면, 희한하게도 자연재해(서리·가뭄 등)가 닥쳐오곤 했죠. 그래서 공급과잉이 한 방에 해소되고 커피값이 다시 치솟으면 그땐 또 너도나도 뛰어들고요. 전형적인 농산물 시장의 구조입니다.
변동성 키우는 선물시장
커피값을 끌어올린 악당이 뚜렷하지 않고, 자연의 심술 탓이 크다니. 좀 허무한 이야기인가요. 여기서 지적할 게 있습니다. 작황에 따라 커피 가격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거야 당연한데요. 그 움직임을 더 뾰족뾰족하게 만드는 요인이 있습니다. 글로벌 커피 거래 가격을 결정하는 기준이 바로 선물시장 가격이란 점입니다. 뉴욕상품거래소(ICE)의 커피C선물지수(이른바 C-가격)이 그것이죠.
선물은 ‘미래의 특정 시점 정해진 가격으로 상품을 사겠다’라고 미리 계약을 맺는 걸 뜻하죠. 선물시장은 현물시장과는 별개의 금융시장이기 때문에 가격 결정 메커니즘도 다릅니다. 일단 농부들의 생산비용과는 전혀 상관없고요. 때론 커피 현물에 대한 수요·공급과도 달리 움직입니다. 지정학적 이슈나 공급망 문제가 영향을 끼치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단기 차익을 노리는 투기 수요가 어느 쪽에 베팅하느냐에 따라 추세가 증폭되곤 하죠. 글로벌 커피 가격이 추락할 땐 아주 바닥을 뚫고 내려가고, 오를 땐 또 무섭게 치솟는 게 바로 이런 선물시장의 속성 때문입니다. 투기세력이 가세하면서 시장의 쏠림을 키우는 거죠.
이렇게 결정된 선물 가격은 사실상 거의 모든 커피 농장의 현지 판매 가격을 결정합니다. 그렇다 보니 선물가격이 바닥을 칠 땐 대다수 소규모 농장은 인건비도 못 건지는 헐값을 받게 되죠. 그러다 보니 커피 생두 가격이 내내 낮았던 2000년대엔 생산자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급한다는 ‘공정무역 커피’가 세계적으로 큰 이슈였습니다.
그리고 커피 가격이 뛰는 지금은 그와 반대 상황이 펼쳐집니다. 투기 세력이 가세하며 가격 상승 추세를 더 가파르게 만들고 있죠. 어찌 보면 과거에 너무 낮게, 1달러 안팎까지 값이 떨어졌던 것의 반작용인 셈입니다. 지금 커피값이 비싼 게 아니라 이전 가격이 너무 쌌던 거라고 해석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강한 잡종이 대안?
그럼 커피 값이 주기적으로 널뛰는 건 하늘의 뜻이다 생각하고 그냥 두고 볼 수밖에 없냐고요? 그렇진 않죠. 주기적으로 닥쳐오는 악천후, 점점 높아지는 지구 온도에 대비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이를 위한 가장 농업적인 해결책은 결국 육종 기술에 있죠.
전 세계 커피 생산의 60%를 차지하는 아라비카 커피는 고급스러운 풍미로 인기를 끌지만 감염병(특히 커피 녹병)과 높은 기온에 약합니다. 선선한 고지대(600~2000m)에서 재배해야 하니 키우는 것도 더 번거롭고, 서리 피해를 입을 우려도 크죠. 무엇보다 지구 온난화로 재배면적이 갈수록 줄어들고요.
그래서 과학자들은 다양한 ‘잡종 커피’를 연구 중입니다. 질병과 기후변화에 강하면서도 생산성은 높고 풍미까지 훌륭한, 그런 신품종을 찾아내려는 겁니다. 비영리기관 월드커피리서치(WCR)는 5년째 아라비카의 서로 다른 품종을 교배한 잡종 커피를 연구 중이고요. 또 다른 과학자들은 아라비카보다 훨씬 나무가 강하지만 평판이 그닥 좋지 않아서(단맛이 강함) 오래전 잊혀졌던 리베리카 품종 커피를 되살려 개량하는 데 집중합니다.
물론 품종 개량이 얼마나 성공적일지는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시간과 돈이 많이 드는 작업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10년, 20년 뒤에도 우리가 커피를 지금처럼 여유롭게 즐길 수 있으려면 꼭 필요한 일이 아닐까요. 매일 마시던 커피 한잔이 조금은 더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By.딥다이브
연간 1인당 커피 소비량 405잔. 한국인의 커피 사랑은 세계적이죠.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라는 신조어부터, 최근 ‘커피 선결제’란 트렌드까지. 커피에 꽤나 진심인데요. 더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닌, 우리 생활에 밀접한 커피 생산 시장을 들여다봤습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 드리자면.
-국제 커피 생두 가격이 파운드당 3달러대에 진입했습니다. 지난달엔 최고점(3.49달러)을 새로 썼죠. 2021년과 2024년 연이어 닥친 서리피해로 최대 생산국 브라질 작황이 타격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길게 보면 커피 가격은 악천후로 인해 주기적으로 급등하곤 했습니다. 특별한 ‘악당’이 없어도 자연재해 탓에 가격이 널뛰기도 하는 게 본래 농산물 시장의 특징이니까요. 지금의 높은 가격은 다시 더 많은 커피 재배 붐으로 이어져, 수년 뒤엔 공급과잉 상태로 되돌려 놓을 겁니다. 늘 그랬듯이 말이죠.
-커피 가격이 선물시장에서 결정되는 구조는 커피가격 그래프를 더 뾰족뾰족하게 만듭니다. 가격의 상승 또는 하락 추세가 더 증폭되죠. 지금 커피 가격이 너무 심하게 뛰는 건 과거엔 지나치게 떨어졌었단 뜻이기도 합니다.
-세계인이 사랑하는 커피, 그 중에서도 아라비카 품종은 너무 예민하고 약합니다. 더 강건하면서도 품질이 좋은 그런 품종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요. 과학자들의 연구에 기대를 걸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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