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뱀의 해, 우아한 파이선으로 스타일링해 볼까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월 8일 03시 00분


[패션 NOW]
하이패션 디자이너의 단골 소재… 우아한 헤리티지 상징 모티프
디지털 프린팅으로 패턴 표현… 심플한 아이템과 매치해야 효과

을사년 푸른 뱀의 해가 도래했다. 뱀은 동양의 십이지 가운데 가장 지혜로운 동물로 그려진다. 허물을 벗고 성장하는 모습에선 치유와 변화의 상징으로 통하기도 한다. 또한 풍요를 가져다준다고 하여 집에 들어온 구렁이를 절대 내쫓지 말라는 토속신앙이 있을 만큼 귀히 여겨진다. 어디 그뿐인가. 서양의 구약성서에선 이브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을 만큼 신비롭고 관능적인 존재로 묘사된다. 고대 이집트 역사상 상징적인 유물 중 하나인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에는 코브라가 새겨져 있고, 이탈리아 로마의 바티칸 박물관에는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가 몸에 뱀을 칭칭 감고 있는 조각품이 전시돼 있을 만큼 뱀은 힘과 권력을 상징하는 아이콘이었다.

이렇듯 뱀을 향한 갈망은 일찍부터 패션계에서도 감지됐다.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1837년 즉위식에서 착용한 팔찌와 1839년 앨버트 왕자로부터 받은 약혼반지에는 모두 뱀의 형상이 깃들어 있다. 남다른 금실을 자랑한 여왕 부부에게 뱀은 영원한 사랑의 증표이자 아름다움의 상징이었다. 빅토리아 시대에 성행한 뱀 모티프 주얼리는 아르누보 시대에 접어들면서 유명 프랑스 예술가인 르네 랄리크와 조르주 푸케에 의해 더욱 다채로운 주얼리로 거듭났고 상류층에서는 이 유행을 충실히 따랐다. 뱀의 비늘을 재현한 육각형 패턴과 부드럽고 유려한 곡선미는 오늘날의 불가리, 부쉐론, 카르티에 등 역사 깊은 주얼리 하우스의 창조적 영감으로 이어졌다. 뱀의 가죽을 덮고 있는 각각의 비늘이 모여 이국적인 장관을 만들어내는 파이선 패턴은 하이패션 디자이너들의 단골 소재였다. 일례로 구찌는 뱀 모티프를 디자인에 반복적으로 등장시키며 1990년대 패션계를 호령했다. 비단뱀을 연상시키는 화려하고 이국적인 파이선 패턴 백부터 의류와 액세서리까지 애호가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구찌의 미학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존재가 됐다.

럭셔리의 정수로 불리던 파이선 패턴이 대중적 인기를 누린 건 2000년대 초반의 일이다. 브리트니 스피어스,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에이브릴 라빈 등 당대 스타일 아이콘으로 추앙받던 팝스타들의 파이선 패션이 한몫했다. 수천 년의 역사 속 뱀은 우아한 헤리티지를 상징하는 모티프에서 계절을 막론하고 꾸준히 사랑받는 스테디셀러로 본격적인 유행의 궤도에 올랐다.

뱀의 해를 맞이해 패션계에서는 ‘파이선’ 패턴에 주목하고 있다. 루이뷔통은 파이선 패턴을 픽셀화한 슈트를 통해 쿨하고 젊은 감각을 보여줬다(왼쪽 사진). 보테가베네타는 섬세한 시퀸 장식으로 부드럽고 반짝이는 우유뱀의 비늘을 표현한 레드 드레스로 눈길을 사로잡았다(가운데 사진). 발렌티노는 아르누보 양식과 조화를 이룬 고전적 스타일을 선보였다. 사진 출처 각 브랜드
뱀의 해를 맞이해 패션계에서는 ‘파이선’ 패턴에 주목하고 있다. 루이뷔통은 파이선 패턴을 픽셀화한 슈트를 통해 쿨하고 젊은 감각을 보여줬다(왼쪽 사진). 보테가베네타는 섬세한 시퀸 장식으로 부드럽고 반짝이는 우유뱀의 비늘을 표현한 레드 드레스로 눈길을 사로잡았다(가운데 사진). 발렌티노는 아르누보 양식과 조화를 이룬 고전적 스타일을 선보였다. 사진 출처 각 브랜드
패션계에 식지 않는 Y2K 열풍과 함께 파이선 패턴이 다시금 주목받으며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빼놓을 수 없는 패션 키워드에 랭크됐다. 하지만 올 봄여름 시즌은 조금 더 특별하다. 친환경 소비를 넘어 본격적인 ‘필환경’ 시대가 열리면서 대다수의 패션 하우스들이 동물의 가죽이나 털을 착취하는 방식이 아닌, 디지털 프린팅이나 식물성 소재를 개발하는 윤리적인 공정 방식을 몸소 실천하고 나섰다. 동물을 보호하면서 보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트렌드를 즐길 수 있으니 이보다 더 반가울 수 있으랴. 매해 자연을 주제로 한 컬렉션을 선보이는 라콴 스미스는 하늘하늘한 시폰 소재에 파이선 패턴을 적용한 여성스러운 피스들로 신선함을 안겼다. 루이뷔통 역시 마찬가지. 파이선 패턴을 픽셀화한 현대적인 감각의 슈트와 밀리터리풍 재킷들로 런웨이를 채우며 특유의 쿨하고 젊은 감각을 발휘했다. 한 땀 한 땀 수놓은 섬세한 시퀸 장식으로 부드럽고 반짝이는 우유뱀의 비늘을 표현한 보테가베네타의 강렬한 레드 드레스도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 밖에 아르누보 양식과 조화를 이룬 고전적인 스타일의 발렌티노와 파이선 패턴 백으로 스타일에 숨을 불어넣은 조르조 아르마니, 뱀이 똬리를 틀고 있는 모양을 형상화한 예술적 프린트의 로맨스워즈본까지 선택의 폭을 넓혔다.

자칫 과할 수 있는 파이선 패턴은 심플한 아이템과 매치해야 스타일리시해 보인다. 선뜻 용기가 나지 않는다면 캐주얼한 아이템을 섞는 것도 현명한 방법. 켄들 제너, 두아 리파, 케이티 홈스 등 젠지 사이에서 핫한 셀럽들처럼 파이선 패턴 톱과 아우터에 데님 팬츠를 매치하면 무심한 듯 시크한 스타일링이 완성된다.

패션계가 파이선 패턴에 열광하는 진짜 이유는 어쩌면 어려운 시국을 헤쳐나갈 지혜로운 존재에 대한 갈망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푸른 뱀의 해를 맞아 파이선 패턴을 휘감고 기분 전환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가 매일 입는 옷이라는 매개체는 때론 스스로를 감싸안고 위로하는 순간을 선사하기도 하니까.

#패션계#파이선 패턴#을사년 푸른 뱀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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