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한류, K-헤리티지로] 〈10〉 식품-문화산업 이끄는 CJ그룹
“국민 생활에 꼭 필요한건 국산으로”… 선대회장 일념으로 설탕 최초 생산
햇반-비비고, 혁신제품 선보여… 멀티플렉스 극장 국내 첫 도입
‘기생충’ 투자-배급 등 영화산업 주도… ‘MAMA’ 개최 등 K팝 열풍에도 기여
1953년 11월 5일 부산 부전동 제일제당 부산공장. 4대의 원심분리기 주변으로 직원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공장 안이 긴장감으로 팽팽한 가운데 직원들이 기계 속으로 원당을 퍼 나르기 시작했다. 제일제당 창업주인 이병철 선대회장이 스위치 버튼을 누르자 ‘우웅’ 하는 굉음과 함께 누런 원당이 기계 속으로 사라졌다. 긴 기다림 끝에 마침내 기계 토출구에서 하얀 가루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공장에는 이내 직원들의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수차례의 시행착오 끝에 마침내 우리 손으로 만든 최초의 국산 설탕이 생산되는 순간이었다.
CJ그룹의 모태인 제일제당은 1953년 세워졌다. 전쟁으로 물자가 부족하던 시절, 이 선대회장은 “국민의 생활에 꼭 필요한 것은 국산으로 충족시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설탕 생산에 뛰어들었다. 설탕의 국산 생산 비중은 제일제당이 최초 생산에 성공한 지 5년 만에 100%에 이르렀다.
● ‘온리원’ 정신 바탕으로 시장 선도
CJ그룹을 관통하는 경영철학은 ‘온리원(ONLYONE)’ 정신이다. 모든 과정에서 최초, 최고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다른 제품들과 차별화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햇반’ ‘비비고 만두’ 등 CJ제일제당의 대표 상품들도 모두 온리원 정신에 입각해 탄생했다. 1994년 식품연구소에서 개발한 즉석밥 ‘햇반’은 CJ제일제당이 1989년 즉석밥 개발에 착수한 이래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생산해낸 제품이다. 회사는 당시 제품에 적합한 설비 구축을 위해 100억 원의 투자를 감행했다. 사내에서는 “소비자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즉석밥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데 투자금이 과하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햇반은 출시 직후부터 돌풍을 일으켜 15일 만에 2억5000만 원어치가 팔렸고, 오늘날 즉석밥은 1인 가구의 필수품으로 자리매김했다.
2013년 출시된 ‘비비고 왕교자’도 마찬가지다. ‘맛의 기본에 충실하자’는 일념으로 채소와 고기를 갈아 만두소를 만들던 기존 제품들과 달리, 재료를 육면체 모양으로 깍둑썰기를 해 씹는 맛을 높였다. 제품력에 힘입어 후발 주자였음에도 출시 1년 만에 국내 냉동만두 시장 1위에 올라섰다. 오늘날 두 제품은 전 세계를 강타한 K푸드 열풍의 중심에 서 있다. CJ그룹 관계자는 “CJ제일제당이 ‘온리원’ 정신을 바탕으로 혁신적인 제품을 선보여 시장을 선도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설명했다.
1993년 삼성그룹으로부터 독립경영을 선언한 이래 CJ는 식품뿐 아니라 유통, 바이오 등 각종 산업군에서 시장을 선도해 왔다. 법적 절차를 거쳐 1997년 본격적인 독립경영이 시작된 뒤 공격적으로 신사업을 확장하며 사업구조 개편에 나섰다. 1998년에는 국내 최초로 멀티플렉스 극장을 도입했고 2000년에는 CJ온스타일의 전신인 39쇼핑을 인수해 홈쇼핑 사업에 진출했다. 2011년에는 CJ E&M(현 CJ ENM)을 출범하고 대한통운(현 CJ대한통운)을 인수해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본격화하고 물류업에도 진출했다. 이 같은 과정을 통해 CJ그룹은 1995년 매출 1조6000억 원이었던 내수 위주 식품 기업에서 28년 만인 2023년, 매출 41조 원이 넘는 국내 대표 생활문화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 “문화가 미래다” K웨이브 주역으로
문화·콘텐츠 산업은 오늘날 CJ그룹을 대표하는 키워드 중 하나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을 필두로 일찍이 문화산업에 공을 들여 ‘온리원 콘텐츠’를 육성해 온 CJ그룹은 오늘날 전 세계를 강타한 ‘K웨이브’ 열풍의 주역으로 꼽힌다.
제일제당은 1995년 영화감독이자 제작자인 스티븐 스필버그 등이 만든 ‘드림웍스SKG’에 3억 달러(약 3500억 원)를 투자했다. 당시 회사 연매출의 20%가 넘는 거액이었다. 제일제당은 이를 통해 영화 배급, 마케팅, 재무 관리 등 할리우드의 운영 노하우를 지원받기로 협의했다. 당시 제일제당 상무였던 이 회장은 누나인 이미경 부회장(당시 제일제당 이사)에게 “이제는 문화다. 그게 우리의 미래”라며 “단순히 영화 유통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멀티플렉스도 짓고, 영화도 직접 만들고, 음악 사업도 하고, 케이블 채널도 만드는 등 아시아의 할리우드를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고 한다.
오늘날 CJ ENM은 2012년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2014년 영화 ‘명량’ 등 1000만 관객 영화를 잇달아 내놓는가 하면 한국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영화로 평가받는 ‘기생충’의 투자·배급사로 참여하는 등 국내 영화 산업을 주도하고 있다. 국내 최대 규모 K팝 행사인 ‘MAMA AWARDS’와 케이팝 콘서트 ‘케이콘(KCON)’을 매년 개최하면서 K팝 열풍에도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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