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월마트에서 출시한 워킨백이 화제다.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 버킨백과 유사한 디자인의 가방으로 출시되자마자 인플루언서들이 앞다퉈 하울 영상, 버킨백과 비교 영상을 찍으며 입소문을 탔다. 워킨백에 대한 평가는 ‘버킨백과 크게 다를 바 없다’와 ‘값싼 복제품에 불과하다’로 갈리지만 소비자의 호기심을 자극해 품절 대란을 일으켰다. 버킨백 가격은 최소 1000만 원이 넘는다. 여기에 프리미엄까지 붙으면 수억 원을 호가한다. 이와 비교해 워킨백은 최저 78달러(약 11만 원)로 합리적인 가격을 자랑한다. 겉면에 천연 소가죽을 사용하고 안감에는 합성피혁을 적용해 원가를 낮췄다.
틱토커 스타일드바이크리스티의 워킨백 하울 영상. 사진 틱톡 캡처워킨백 열풍을 타고 최근 명품에 관한 대화의 장도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분위기다. 틱토커 캐롤린(Carolyn)은 지난해 10월 핼러윈 코스튬을 위해 월마트에서 워킨백을 구매한 후 틱톡에 명품에 대한 의견을 피력해 공감을 불러왔다. 그는 “과거 버킨백은 부의 상징이었지만, 이제는 버킨백 디자인이 부를 과시하는 수단이 아닌 기호의 범위에 들어왔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도 인기인 명품 맛 듀프
워킨백의 인기는 듀프(dupe) 문화의 일종으로 해석할 수 있다. 듀프란 복제품을 뜻하는 듀플리케이션(duplication)의 준말로, 명품 대신 가성비 높은 저가 대체품을 구매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하지만 듀프는 소위 말하는 ‘짝퉁’과는 다르다. 지식재산권에 걸리지 않을 만큼 큰 특징만 복사해 비슷한 제품을 판매하기 때문이다. 독특한 점은 MZ세대가 마치 놀이하듯 듀프 제품을 찾고, 구매 후 ‘현명한 소비를 했다’고 자축하며 SNS에 전시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듀프 문화는 미국과 유럽을 넘어 한국에서도 유행하고 있다. 국내에서 듀프 문화를 견인하는 것은 유니클로, 자라 같은 SPA 브랜드다. 유니클로의 경우 명품 디자이너들과 협업한 라인을 따로 선보였을 정도다. 에르메스의 수석 디자이너 출신이자 르메르의 창립자 크리스토프 르메르와 작업한 유니클로 U, 지방시와 끌로에 디자이너 출신인 클레어 웨이트 켈러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이끄는 유니클로 C 등이 대표적이다. 대중적인 디자인이 주를 이뤘던 SPA 브랜드에서 명품 브랜드의 아이덴티티와 고급스러운 매력을 접목한 것이다. 이에 소비자들은 해당 라인을 ‘르메르 맛 유니클로’ ‘지방시 맛 유니클로’라는 별칭으로 부르며 열광했다.
한발 더 나아가 패션 인플루언서들은 SPA 브랜드에서 명품 스타일을 찾는 영상을 선보이며 인기를 모으고 있다. ‘디올 맛 자라’ 등의 제목으로 자라에서 디올 느낌의 아이템을 찾아 스타일링하는 법을 소개하는 방식이다.
명품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한 제품과 더불어 명품 비슷한 디자인의 제품들도 화제다. 유니클로 유틸리티백은 요시다포터 가방과 디자인은 비슷하지만 가격은 7분의 1 수준에 불과해 ‘포터 맛 가방’으로 불리며 품절 대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버켄스탁의 반값이지만 디자인과 착용감이 비슷한 H&M의 샌들 역시 듀프 인기 제품으로 떠올랐다.
패션 전문가들은 MZ세대의 경제 상황이 변화함에 따라 명품의 의미가 달라졌다고 입을 모은다. 듀프 소비 관련 리포트를 작성한 강승혜 대홍기획 데이터인사이트팀장은 “과거에는 명품을 소장하는 것이 사회적인 지위를 대변했으나, 팬데믹 시대에 화폐의 유동성이 커지면서 플렉스 문화가 유행했고 이것이 명품의 의미를 바꿨다”고 말했다. 명품의 희소성이 줄어들면서 ‘부자 인증 마크’로서의 명품 기능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명품, 굳이 이 가격에?
실용성을 중시하는 가치관의 변화 역시 듀프 소비의 인기 요인으로 꼽힌다. 강 팀장은 “남의 시선보다 자신의 실속을 먼저 생각하는 MZ세대는 사치재보다 투자나 자기 계발에 더 많은 돈을 쓴다”고 말했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도 “젊은 세대가 명품의 가치와 가격에 의문을 품으면서 실용적 가치관이 확산하는 추세”라고 전했다. 실용적 가치관에 영향을 미친 것은 MZ세대의 ‘정보력’이다. 이 교수는 “소비자들이 정보력을 발휘해 다양한 정보를 접하고 체득하면서 제품을 ‘보는 눈’이 생겼다”며 “자신의 수준에서 최적의 상품을 찾아 구매하는 것을 현명하다고 여긴다”고 말했다.
듀프 문화는 반짝했다 사라지는 현상이 아닌 소비문화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강 팀장은 “듀프는 불황기 때 소비가 위축되는 현상을 넘어서 명품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의 가치관 변화로 일어난 현상”이라며 “경기 흐름과 별개로 장기적인 현상으로 자리 잡을 확률이 높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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