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뉴딜(친환경산업 정책)을 종식하고, 전기차 의무화를 철회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월 20일(현지 시간) 취임사에서 전임 조 바이든 정부의 ‘전기차 의무화’ 정책을 폐기하겠다고 선언했다. 현재 연방정부에는 전기차 의무화 조항이 없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2030년까지 미국 내 모든 신차의 50%를 전기차로 생산해야 한다는 행정명령을 발동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식 직후 바이든 전 대통령의 이 행정명령을 폐기했다. 또 내연기관차 판매를 제한하는 주(州)정부 배출 규제를 적절할 경우 폐지해야 한다는 행정명령에도 서명했다.
이차전지株, 트럼프 당선 후 줄줄이 하락
트럼프 대통령이 전기차 의무화 철회를 언급함에 따라 국내 배터리 기업에도 후폭풍이 예고됐다. 전기차 의무화가 철회되면 글로벌 최대 자동차 시장인 미국에서 전기차 확산 속도가 둔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관련 업계가 촉각을 세우는 부분은 바이든 행정부의 대표 정책인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폐지 여부다. IRA는 완성차와 배터리에 대해 △구매자 대상 전기차 세액공제 △투자 세액공제 △첨단제조 생산 세액 공제(AMPC) 등 크게 3가지 혜택을 부여한다. 한국 배터리 기업은 그중 AMPC 혜택을 받아 분기마다 최대 수천억 원 세액공제를 받았다. 전문가들은 IRA를 폐기하려면 상하원 동의가 필요한 만큼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명령을 통해 혜택을 축소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지만, 국내 이차전지 업계는 트럼프 취임 첫날부터 직격탄을 맞은 모양새다. 1월 2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포스코퓨처엠 주가는 전일 대비 1만5400원(9.88%) 하락한 14만400원에 장을 마감했다. 에코프로비엠(-8.62%), 에코프로머티(-7.14%), 에코프로(-5.87%), LG화학(-4.75%), LG에너지솔루션(-4.32%), 삼성SDI(-3.90%) 역시 하락세를 보였다. 사실 국내 배터리 업계는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3개월째 주가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 대선이 치러지기 전날인 11월 5일부터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 이후인 1월 22일까지 에코프로머티(-39.92%)와 포스코퓨처엠(-39.67%)은 주가가 40% 가까이 빠진 상태다(그래프 참조). 그 뒤를 SK아이이테크놀로지(-29.80%), 삼성SDI(-29.04%), 에코프로비엠(-28.24%), 에코프로(-26.86%), LG화학(-23.96%), POSCO홀딩스(-23.48%), 엘앤에프(-18.93%), LG에너지솔루션(-15.49%) 등이 이었다. 국내 이차전지 업계는 이미 수익성 악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장기화로 글로벌 전기차 수요가 둔화하며 완성차 제조사들이 생산 물량을 조정한 여파다.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SK온은 지난해 4분기 동반 적자를 낸 것으로 추정된다. 2021년 3사 체제가 출범한 이후 처음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4분기 2255억 원 적자를 기록했다.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빼면 적자 규모는 6028억 원이다.
정부, 이차전지 비상 TF 가동
증권가에서는 1월 24일 실적 발표를 예고한 삼성SDI와 SK온 역시 지난해 4분기 영업손실을 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삼성SDI는 1000억~2000억 원, SK온은 2000억~3000억 원 적자를 낸 것으로 추산했다. 삼성SDI의 분기 적자는 673억 원 손실을 냈던 2017년 1분기 이후 8년여 만이다. SK온은 지난해 3분기 처음으로 240억 원 흑자를 냈지만, 4분기엔 업황 둔화로 다시 적자로 전환한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배터리 업계의 시장점유율 상승도 국내 기업들 입지를 위협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국내 배터리 3사의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사용량 시장점유율은 19.8%를 기록했다. 2023년 23.5%에서 하락한 수치다. 반면 글로벌 배터리 1위 기업 CATL은 2023년 36.2%에서 지난해 36.8%로, 2위 기업 비야디(BYD)는 15.9%에서 17.1%로 상승했다. 현재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혜택 축소 가능성에 대비해 여파 최소화를 위한 대응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애리조나 공장에 약 7조2000억 원을 투자해 차세대 원통형 배터리 생산 라인을 구축하고, GM과 합작법인으로 추진한 얼티엄셀즈 3공장을 인수해 단독 공장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SK온은 올해 포드와의 합작사 블루오벌SK의 켄터키 1공장과 테네시 공장, 조지아의 현대차 합작 공장 등 3곳을 가동하기 시작한다. 삼성SDI 역시 미국 스텔란티스와의 합작사(JV) 스타플러스에너지(SPE)의 생산 공장 4개 라인 중 1개 라인을 지난해 말 조기 가동한 데 이어 올해 1분기부터 나머지 3개 라인을 차례로 가동할 예정이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배터리산업협회, 배터리·배터리 소재 기업들은 ‘이차전지 비상대책 TF’를 구성하고 회의를 진행했다. 박태성 한국배터리산업협회 부회장은 “트럼프 2기 출범을 계기로 새로운 한미 배터리 협력 사업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며 “관련 투자 확대와 기술 초격차 확보 등 협상 카드가 많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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