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상승률도 따라잡지 못하는 원리금보장형에 80% 이상 쏠려
실적배당형과 수익률 3배 차이… 10년 뒤 1000조 원 시장될 전망
대량 퇴직 시대, 인출 계획도 중요
국내에 퇴직연금제도가 도입된 지 20년. 이제는 ‘퇴직연금 2.0’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2005년 12월 시작된 퇴직연금은 그간 양적으로는 빠르게 성장했으나 질적으로는 갈 길이 멀어서 마치 ‘몸집만 큰 아이’처럼 돼버렸다.
과거 퇴직금은 ‘회사’가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시스템을 유지해 왔으나 퇴직 시점에 회사 형편이 어려워지면 못 받게 되거나 목돈을 한 번에 받아 자칫 투자에 실패할 경우 노후가 흔들리는 일이 적지 않았다. 퇴직연금제도는 고용주가 근로자의 근로기간 중 1년에 30일분 평균 임금을 금융기관에 맡기는 형태로 소득이 끊긴 퇴직자의 노후 생계를 안정적으로 뒷받침하고 국민연금 수령 연령까지의 소득 공백을 메워주는 역할이 기대됐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382조4000억 원. 업계에서는 2024년 420조 원 규모로 불어났을 것으로 추산한다. 국민연금과 개인연금을 합친 전체 연금시장에서 퇴직연금의 비중은 21.4%까지 성장했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미진한 점이 많다.
우선 퇴직연금 도입률이 26.8%(2022년 기준)로 아직 저조하다. 300인 이상 사업장은 91.9%에 이르지만 30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23.7%에 불과하다. 근로자들이 이직하거나 퇴직할 때 연금을 중도 인출하거나 일시금으로 찾는 경우가 많아 불안정성을 가중시켰다.
가장 큰 문제는 ‘쥐꼬리’라는 수식어가 붙는 낮은 수익률. 지난 5년간 퇴직연금의 수익률은 연평균 2.35%에 불과해 예금 금리 수준에 머물렀다. 이 수익률을 올릴 방안으로 근로자의 별도 운용 지시가 없으면 사전에 정해둔 방법으로 적립금이 운용되도록 하는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가 2023년 도입됐으나,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업권 내 이해관계 다툼 속에 ‘초저위험’ 등급에 예금이 포함되면서 전체 적립금의 80% 이상이 원리금보장상품으로 쏠려 제도 도입 취지가 무색해졌다.
● 쥐꼬리 수익률은 정기예금 편중 탓
퇴직연금의 수익률이 낮다는 비판에 대해 금융투자업계에서는 ‘평균의 함정’을 지적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 퇴직연금의 87.2%가 원리금보장상품으로 운용되고 있다. 최근 5년간 퇴직연금의 전체 수익률은 2.35%지만 운용방법별로 나눠서 보면 원리금보장형은 4.08%, 실적배당형은 13.27%로 수익률 격차가 크다는 것(2023년 기준).
최근에는 확정기여형(DC)계좌 수익률이 100%를 넘어섰다거나 은퇴 전까지 연금계좌로 10억 원 만들기를 목표로 한다는 직장인들의 사연이 보도되기도 한다. 주로 미국 지수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에 투자한 경우가 많았다. 퇴직연금 계좌도 투자자가 적극적으로 굴리면 대박이 날 수 있다는 것.
● ‘자기주도형’ vs ‘방치형’의 양극화
업계에서는 투자자들이 극단적으로 양분돼 있다고 말한다. 한쪽에는 원리금보장상품만으로 전체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방치형 투자자’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적립금을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자기주도형 투자자’들도 있다.
실제로 퇴직연금은 운영주체별로 회사가 운영하는 확정급여형(DB), 근로자 본인이 운영하는 DC, 퇴직 이후에도 본인이 운영하는 개인형 퇴직연금(IRP)으로 나뉘는데 수익률은 본인의 관여도가 높은 순서로 높다. 즉 ,IRP가 가장 높고 DC, DB의 순으로 투자자의 관심과 운용이 수익률을 좌우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나 초고령 사회에서는 장기투자자산에서 원리금보장상품은 결국에는 안전하지 못하게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리가 정해진 원리금보장상품이 처음에는 안전해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물가를 못 쫓아가거나 성장률이 둔화되면 금리가 내려가 문제가 생기게 된다는 것. 반대로 실적배당형 투자자산은 투자 시점에는 위험자산일 수 있지만 물가상승률을 추종하고 성장에 따른 수혜를 수익률로 보상받을 수 있다. 연금투자는 본인의 소득이 둔화하는 시기에 대한 대비이므로 장기적으로 성장에 포커스를 둔 투자를 해야 한다.
● 대량 퇴직시대, ‘현명한 인출’ 준비해야
다른 한편으로 퇴직연금 2.0시대는 한국의 전체 연령대에서 은퇴 준비 세대가 가장 많아지는 시기와 맞물리게 된다. 투자와 적립에 목적이 있었던 1.0시대보다 더 성숙한 시스템이 요구된다. 자산 불리기 못지않게 자산을 연금소득으로 바꿔 인출하는 흐름도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에서는 인출 및 은퇴설계전문가를 양성하고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로보 어드바이저를 개발하는 등 투자자 개개인의 성향과 상황에 맞춘 시스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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