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許 燁기자」 좋아하는 노래에는 사연이 있다. 가슴앓이를 하던 시절 우연히 접한 짧은 구절 때문에 좋아했던 노래 하나는 시간이 흐른 뒤 추억의 매개체가 된다. 그래서 「추억의…」 프로는 중년 시청자들의 시계바늘을 20, 30년전으로 돌려놓게 마련이다.
28일 밤 KBS 1TV 「빅쇼」에서 방영한 「조영남―추억의 팝송」도 그런 프로였다. 이 프로는 특히 신세대 위주의 송년특집과 달리 중년세대가 가슴 한편에 묻어두었을 법한 노래로 꾸몄다는 점이 돋보였다.
이날 조영남이 50여분간 부른 노래는 「언체인드 멜로디」 「그린 그린 그래스 오브 홈」 「마이 웨이」 「유어 치팅 하트」 「코튼 필드」 등. 모두가 60, 70년대 젊음의 낭만이 담긴 애청팝들이다. 조영남은 도입부에 『나도 팝송과 청바지로 젊은 시절을 보냈다』는 회상으로 이날 공연의 의미를 더했다. 공연 중간에 화음을 맞춘 윤형주 김세환 김도향도 스타와 관객으로서가 아니라 소식이 궁금한 옛 친구가 나선 것처럼 무대를 꾸몄다. 그리고 노래에 얽힌 사연을 풀어 놓으며 시청자들에게 그때 그시절을 연상시켰다.
또 윤형주는 팝송 대신 히트곡 「우리들의 이야기」의 가사처럼 교정에서 만났던 「라일락 사랑」을 되돌아봤고 인순이와 조영남은 각각 「프라우드 메리」와 이를 번안한 「물레방아 인생」을 서로 화답, 팝번안곡이 많았던 당시 가요계의 단면을 보여주었다.
시청률 경쟁탓으로 오락프로에서 중년이 밀린 것은 「명퇴바람」보다 앞선 일이다. 더욱이 대중문화의 키를 신세대가 쥐고 있다하더라도 쇼프로의 중년경시는 명퇴와 더불어 중년들에게 「억울하다」는 생각마저 강요하는 요즘이다.
이런 와중에 「조영남―추억의 팝송」은 세모지정보다 내년의 경기불안과 명퇴부담을 먼저 걱정해야 하는 중년세대에게 잃어버린 것을 되새기는 공간을 제공했다. 더불어 중년시청자들에게 노래에 얽힌 사연을 들어보는 코너를 곁들여 동년배들만이 공유하는 「세대의 추억」도 이끌어냈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