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식 기자] 「사랑」 그리고 「조건」이라는 단어는 가장 오래된 드라마의 단골 주제일 것이다.
지난 1일 방영된 MBC의 3.1절 특집극인 2부작 「사랑의 조건(이금주 하명희극본 이대영연출)」도 누구나 할 말을 지님직한 사랑과 조건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드라마 제목의 앞부분인 「사랑」에는 어머니(김청)와 딸(신애라) 등 2대에 걸친 「닮은 꼴」의 사랑이 들어있다. 잡지사 기자인 한국인 여성 정민과 사진작가인 일본인 남성 히로시(정준호)는 짧은 만남 끝에 사랑에 빠진다. 20여년전으로 시계를 돌리면 현재 진행형인 정민의 사랑 앞에 정민의 어머니와 일본인 소설가의 사랑과 이별이 놓여 있다.
후반부 「조건」에는 정신대 문제와 서로 다른 사회 속에서 성장해온 남녀의 이질적 가치관 등 한일간 역사의 단편들이 묻어 있다. 어머니와 딸은 똑같이 일본인 남자를 사랑하지만 조건의 벽에 부닥쳐 고통속에 시달린다.
3.1절이라는 시점의 무게 때문에 극중극의 형태로 정신대 문제가 부각되기도 하지만 결국 드라마의 중심은 「사랑타령」에 맞춰져 있다.
단골 주제를 다룬 것이 문제가 될 수는 없다. 시청자들이 주인공들의 성격과 행동 그리고 메시지를 납득할 수 있느냐는 「설득력」이 완성도를 결정할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제작진이 제공하는 정민과 어머니의 사랑, 극중극으로 펼쳐지는 연극배우(윤여정)의 이야기 등 세 소재는 개별적으로 존재해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어내지 못했다.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다가 시간에 쫓겨 서둘러 끝낸 느낌이다.
자신의 과거 때문에 히로시와의 결혼을 결사적으로 반대하던 어머니가 갑자기 입장을 바꿔 딸의 결정을 인정하는가 하면 『사랑에는 미안하다는 말이 필요없다』고 한다. 주인공 정민의 의식 역시 모호하다. 그는 『과거는 흘러가도록 만드는 것이 좋다』는 히로시의 주장에 『정신대 문제는 토론의 대상이 아니다』며 반박하는 건강한 의식의 소유자다. 그러나 일본방문에서 히로시의 여자 친구 때문에 생긴 오해뒤에는 아무런 해명도 듣지 않고 결별을 선언하는 꽉 막힌 인물이 된다. 극중극을 통해 정신대 문제를 고발하던 금자도 어느 순간 석연치 않게 적대적인 존재들과의 화해를 선언한다.
여기에 마지막 장면은 1년뒤에 나타난 히로시가 과거에 거리를 두던 태도를 바꿔 정신대를 주제로 한 사진전을 개최한다는 식으로 정민과의 「벽」을 넘어섰다고 시청자들에게 이해를 강요한다.
차라리 3.1절 특집극이라는 수식어가 없었다면 지켜볼 만한 드라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