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엽 기자] 일요일 밤 11시가 넘어서면 방송 3사의 프로가 갑자기 싱거워진다. 겉으로는 다양한 듯 하지만 찬찬히 속내를 들여다보면 석연찮은 대목이 적지 않다.
일요일 밤 10시경에는 일단 영화 드라마 외화 토크쇼 등이 나란히 편성되어 주말 저녁시간대 맞편성 싸움이 어느새 소강국면이다.
10시 30분경 KBS1 「용의 눈물」에서는 정도전과 이방원 사이에 피비린내 나는 권력투쟁이 암시되고 KBS2 「드라마 스페셜」에서는 불임의 원인을 찾아 헤매는 젊은 부부의 애환을, SBS 「임꺽정」에서는 임두령을 배신하는 서림을 볼 수 있다. 또 MBC의 「삼국지」에서는 형주를 차지하기 위한 유비와 손권의 지모싸움이 전개된다.
그러나 11시 20분경.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와 「삼국지」가 계속 되고 「행복이 가득한 집」「이주일의 코미디쇼」 등이 끼여들면서 영화팬이 아닌 시청자가 한 채널에 시선을 고정하기가 쉽지 않다.
시청자들의 지루함은 자정이 넘어서면서 더하다. 영화 「웨스트…」는 계속되지만 약효가 다 떨어진 대만산 외화 「신포청천」과 두개의 음악회 「일요음악회」 「사랑의 음악회」가 나란히 배치되어 있는 것이다. 특히 자정이 넘은 시간에 방영되는 음악회는 마땅한 시간대를 찾지 못하다가 이곳에 들어선 듯한 인상이다.
이같은 편성이유는 이 시간대가 시청률 싸움이 뜨거운 곳이 아니라는데 있다. 그런 까닭에 패전처리용 투수처럼 값싼 외화로 땜질하거나 음악회처럼 갈 곳을 찾지 못한 프로를 내보내는 경우가 많다.
특히 「삼국지」처럼 궁중 사극과 크게 다르지 않고 삼국지 고유의 스케일감을 주기에는 역부족인 프로가 90여분간 계속되는 것도 시청자들에 대한 배려는 아니다.이에 대한 한 편성간부의 말. 『시청률 싸움이 치열한 시간대에서는 맞편성으로 총력전을 펼치지만 일요일 밤 시간대는 그렇지 않다. 따라서 「방출」해야 하는 프로를 이 시간대에 소화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