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 바람」이 「모래시계」를 날려버릴 것인가.
지난달 확정됐던 드라마 「모래시계」 재방영이 무산될 위기에 처해 있다. 권력층 비판 등 「민감한 내용」을 담고 있어 가뜩이나 「민감한 현상황」과 맞지 않다는 자체판단에 의해서다.
SBS는 오는 12일부터 방송 예정이던 「모래시계」외에 「머나먼 쏭바강」과 단막극 「테마 드라마」를 준비하도록 일선에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SBS 관계자는 『아직 「모래시계」를 방송할지 「머나먼 쏭바강」을 할지 결정하지 못했다』며 『만일에 대비해 다른 프로그램도 준비토록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SBS는 윤세영회장이 보름동안의 외유에서 돌아오는 대로 금명간 재방영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일개 드라마의 방송 여부를 실무진이 아닌 최고 경영자가 직접 결정하는 것은 방송가에서도 드문 일이다. 그만큼 「모래시계」 방송이 「뜨거운 감자」처럼 민감한 사안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모래시계」 방송이 불투명해진데 대해 SBS측은 여러가지 표면적 이유를 대고 있다.
1년전부터 준비한 단막극 「테마 드라마」의 방송이 늦춰진다는 점과 인천 울산 등에 제2차 지역민방이 출범할 경우 이 지역 시청자들에게는 「모래시계」를 영영 선뵐 수 없다는 논리다.
최근 9시뉴스의 부진 등으로 실추된 방송사 이미지를 높이려는 시도가 여론의 비판을 받고 있다는 추가설명도 잇따른다.
그러나 보름전만 해도 실무선에서 확정했던 재방영이 흔들리는데는 「정치적 고려」가 있다는 방송가의 해석이 보다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와 관련해 SBS 최고 경영층은 『지금은 애국을 해야 할 시기다. 애국하기 위해서 사소한 희생은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한보사태와 경제위기로 가뜩이나 정국이 불안정한 시기에 「모래시계」가 방송되는 것은 국가 사회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는 논리다.
SBS로서는 안그래도 도마에 오른 정보기관과 정부 권력을 비판하는 내용이나 「동족상잔」의 상처를 헤집는 것(광주민주화운동)이 부담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지난 1일 3개 공중파 방송이 처음으로 「경제를 살립시다」 합동생방송을 할 만큼 국가적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 드라마 「임꺽정」도 일부 사회지도급 인사들로부터 『계급 혁명을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과연 가상세계가 현실세계를 지배할 만큼 우리 사회에 불신과 분열의 골이 깊은 것인지는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아니면 끌과 망치(태영건설)로 출발했기 때문에 문화를 문화 자체로 볼 수 없는 SBS의 「태생적 한계」라는 비판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
〈신연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