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용의 눈물」로 본 조선초와 97년4월]

  • 입력 1997년 4월 4일 09시 09분


KBS 1TV 드라마 「용의 눈물」이 점입가경이다. 정도전과 이방원의 권력 투쟁이 갈수록 피비린내를 풍기고 있다. 특히 두 인물의 대립은 단순한 권력 다툼으로 비치지 않는다. 유신(儒臣) 중심의 관료지배체제를 이상으로 추구했던 정도전에 비해 태조 이성계의 다섯번째 아들인 이방원은 강력한 왕권에 대한 야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어 상이한 정치 이념의 대립으로도 풀이된다. 이같은 갈등은 내각제 논의가 돌연 불거진 현 정국과 맞물려 호사가들의 흥미를 더해주고 있다.「용의 눈물」에서 정도전 역의 김흥기와 이방원 역을 맡고 있는 유동근의 입을 통해 역사속에 숨쉬고 있는 두 인물을 비교해본다. ▼유동근이 본 「이방원」▼ 유동근은 『인물에 대한 해석이나 선입견이 있으면 자연스런 연기에 방해가 된다』는 「빈그릇론」을 펼치면서도 『이방원이 아니면 한 국가의 기틀을 누가 제대로 세울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흔히 이방원은 잔인한 성정에 집요한 권력추구자로 알려져 왔습니다. 그가 6백년전 걸었던 길을 연기하면서 군주로서의 능력뿐 아니라 인간적 숨결을 진하게 느낍니다』 집사가 자기 대신 곤장을 맞는 것을 지켜보며 피눈물을 흘리거나 대군의 신분임에도 이숙번을 맞기 위해 절을 하는 모습 등으로 이방원의 인간적 면모를 그렸다는 설명이다. 유동근은 이방원의 행동양식에 대해서도 당시 상황에서는 불가피했다는 「정상참작론」을 펼쳤다. 『조선 건국 초기의 불안정함 때문에 권력분산적인 신권주의보다는 강력한 왕권이 필요했다. 어린 세자책봉은 신권주의를 강화하기 위한 정도전의 계략일 뿐』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 그는 다섯째라는 치명적 약점을 지닌 이방원이 「대권(大權)」을 잡기 위해서는 신권주의를 앞세운 정도전 일파와의 권력투쟁과 가장 가까운 혈육을 살육하는 「왕자의 난」 등을 겪어야만 했다고 「이방원 옹호론」을 펼쳤다. 『그러나 결국 모든 허물은 이방원에게 돌아갔고 열매는 세종의 몫이었다』고 담담히 말하는 유동근. 「장녹수」의 연산군과 「파천무」의 수양대군에 이어 세번째로 극중에서 왕위에 오르는 그는 『이번 드라마로 삶과 역사를 보는 눈이 새롭게 트인 것 같다』고 했다. 〈김갑식기자〉 ▼김흥기가 본 「정도전」▼ 김흥기는 정도전에 대해 『재상을 최고실권자로 하는 합리적 관료체제를 추구한 인물』이라고 분석한다. 일단 왕권에 대립하는 개념으로서 신권중심의 정치적 합의체가 정도전의 이상이었다는 것이다. 정도전 역을 연기하는 동안 조선사를 다시 훑어보고 있다는 그는 『정도전의 비극은 당시 정치 상황보다 지나치게 앞선 이념을 추구한데서 비롯됐다』고 말했다. 서양보다 수백년 앞서 입헌군주제 형태의 정치제도를 주장했고 이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왕권과의 마찰은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김흥기는 『그러나 조선의 건국 이념을 정립한 정도전이 자신을 「킹메이커」로 자부했다는 점을 보면 그의 개인적인 권력욕도 적지 않았던 것같다』며 자신의 「정도전 지지론」에 대한 균형을 잡았다. 이같은 치열한 권력투쟁의 면면을 제외한다면 정도전의 요동을 겨냥한 공격적 군사정책은 사대주의를 벗어나지 못한 조선사에 비추어 선각자적이었다는 것이 김흥기의 평가다. 『연극무대를 포함해 연기인생 30여년입니다. 특히 사극에서는 시청자와의 의식의 교류가 관건이지요. 「용의 눈물」에서는 우리 역사에 대한 자긍심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세종 효종 대원군 등 사극의 주요배역을 거의 다 해보았다는 김흥기는 정적인 이방원에 대해 『연기자로서는 한번쯤 탐낼만한 매력적인 성격』이라면서도 『왕권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과정에서 야비하게 묘사되는 측면도 있다』고 공격을 늦추지 않았다. 〈허 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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