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섭의 시네월드]「주드」,인습에 꺾인 비극적 사랑

  • 입력 1997년 4월 18일 07시 41분


토머스 하디 하면 「테스」를 떠올리는 것은 교양인의 상식이자 강박관념이지만 「비운의 주드」를 읽지 못했다면 작가를 절반 정도만 아는 것이다. 그의 마지막 작품으로 기록되는 이 소설은 제목이 보여주는 바대로 영국의 습기찬 날씨 만큼이나 우울하고 영국식 유머보다도 냉소적이고 어두웠던 하디의 비극적 세계관의 절정을 이루는 작품이다. 자칫 시대극이 던져줄 고리타분함에 대한 염려에서인지 영화의 전체적인 리듬감은 역설적으로 빠르다못해 경쾌하다. 또한 영국민요와 바로크풍의 곡들로 배치된 음악의 사용, 드라마의 실제공간에 얽매이지 않고 뉴질랜드 해안까지 날아가 앵글을 맞춘 카메라 덕택으로 영화의 느낌은 세련되고 화려하다. 그러나 영화가 끝나고 장내에 불이 켜지면 관객들은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마음의 동요와 충격을 받게 된다. 왜냐하면 드라마의 시공간은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세련되고 우아한 영국의 도시들이지만 주인공들은 마치 그리스 고전 비극의 인물을 연상시키는 가혹한 운명에 지배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혁명과 자본주의의 번성으로 현대를 준비하던 빅토리아조의 영국사회는 그 외양의 활기차고 자유스러움에 대한 반동인지, 사람들이 만나고 사랑하고 이별하는 방식을 규정하는 윤리와 관습을 여전히 두꺼운 편견의 벽에 가두어 놓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는 이 경제적 자유스러움과 인습의 구속이라는 모순의 시대에 석공주드의 신분상승 욕구가 어떻게 좌절되며 사촌여동생 수에 대한 조건없는 사랑이 어떤 비극을 잉태하게 되는지 침착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영화는 갑자기 원작의 결말을 무시한 채 주드의 외마디로 엔드마크를 찍는다. 『이 세상에 진정한 부부가 있다면 그건 바로 우리야』 주드는 빈곤으로 자살해 버린 세 자식이 묻혀있는 공동묘지에서 수에게 소리치지만 그 외마디에 충격받는 사람은 사실 관객들이다. 신예감독 마이클 윈터바틈의 영화가 시대극의 재현으로 만족하지 않고 한 세기 후의 영화관객에게도 뜨겁게 다가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강한섭(서울예전 영화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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