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도 허무한 「첫사랑의 신화」가 마침내 막을 내렸다.
지난 20일 종영된 KBS의 주말드라마 「첫사랑」은 「시청자 사로잡기」에 성공한 드라마다. 특히 시청률 영역에서 드라마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첫회부터 시청률 1위를 기록한 뒤 방영기간 내내 60% 안팎의 시청률을 올리는 괴력을 보인 것이다.
「모래시계」나 「애인」처럼 사회적 이슈로 안방을 파고든 드라마도 아닌 진부한 사랑타령의 「첫사랑」에 쏟아진 불가사의한 시청률은 무엇 때문일까.
「목욕탕집 남자들」의 후광과 경쟁드라마의 부진에 따른 반사이익 등 외부적 요인도 컸지만 「첫사랑」 바람의 근본적 원인은 이 드라마가 「종합선물세트」같다는 점에 있다.
선물의 포장을 뜯으면 멜로라는 주력 상품에 교복으로 상징되는 80년대 「향수」가 등장하는가 하면 뜨거운 형제애와 가족애가 들어있다.
또 신자 동팔 찬혁 석진 등 천연기념물이나 다름없는 순정파 인물들이 이미 감동할 준비가 돼있는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더구나 『첫사랑은 과연 이루어질까』라는 기본 테마속에 이따금 등장하는 찬우의 복수극은 보는 이를 팽팽하게 끌어당겼다. 이 드라마는 첫회부터 꼼꼼히 지켜봤다면 곧 어렵지 않게 등장인물의 행보를 짚어볼 수 있을 정도로 뻔한 스토리다.
권선징악의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는 「잘 짜여진」 이 진부함은 역설적으로 시청자들을 편안하게 끌어당기는 흡인력을 발휘했다. 작가는 찬혁과 효경의 사랑타령이 싫증날만하면 다른 인물로 포커스를 이동했다가 다시 돌아오는 「시계추」식으로 8개월을 지탱해 왔다.
그러나 성공한 드라마의 뒷면은 시청률을 향해 하나둘씩 빠져나간 선물세트의 빈 공간처럼 허전하기만하다. 드라마와 현실이 만나는 공감대나 실험적 영상문법과 소재 등 새로운 「선물」없이 『그저 그런 이야기를 지리하게 지켜봐야 했나』하고 자문케 한다.
「첫사랑」은 시청률 기록을 남기고 끝났다. 그것뿐인 것만 같아 우리는 더욱 허탈하다.
〈김갑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