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말의 혼돈을 예고하는 혹세무민(惑世誣民)인가, 기존 과학기준의 틀을 탈피한 자유로운 표현인가.
TV에 「귀신」이 출몰하고 있다.
귀신을 믿는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올여름 밤은 귀신과 함께 오싹하게 보내야 할 판이다.
MBC 「다큐멘터리 이야기속으로」는 신비한 체험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주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SBS도 최근 유사프로 「토요 미스터리」를 방영하기 시작했다. KBS도 질세라 여름 납량특집 「전설의 고향」에서 귀신이야기를 준비하고 있다.
제작진은 『귀신을 배척하거나 지배하려는 서양에 비해 우리민족은 귀신을 친근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라며 이 때문에 귀신은 훌륭한 방송소재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에 모든 이가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방송위원회는 「다큐멘터리…」가 비과학적 생활태도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올 상반기에만 다섯차례의 경고와 「책임자 연출자 징계명령」을 내렸다. 「토요 미스터리」도 지난 7일 「사과명령 및 책임자 연출자 징계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연출자들이 「표현의 자유」를 외치며 크게 반발하면서 오히려 귀신 프로는 확산되는 추세다. 최근에는 MBC 「간이역」 등 드라마에도 귀신이 등장했으며 Q채널(채널25)에 「유령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오는 등 케이블TV로도 퍼졌다. 영화에서도 「자귀모(자살한 귀신들의 모임)」 「퇴마록」 「귀신 이야기」 등이 잇따라 나올 태세다.
이러한 「귀신」들의 범람속에서 시청자들은 일종의 공포와 호기심을 느낀다. 일부 정신과에서는 이들 프로를 보고 심리적 불안을 호소하는 환자가 있다고 공개하기도 했다.
「귀신」에 대해 다룰 수는 있다. 문제는 지나친 상업주의적 남발이다. 「증명 불가능」을 이유로 「귀신」의 존재를 강조할 수 있겠지만 바로 그 때문에 정신적 혼돈을 야기할 수도 있다. 방송위는 이같은 이유로 지난 9일 각 방송사에 귀신이야기 관련 프로 제작에 신중을 기해달라는 권고문을 보냈다.
〈이원홍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