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대목에 이르면 누구나 박사가 된다. 달변의 사랑학이든 침묵이든 표현방식은 달라도 구구절절 사연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13일 방영된 SBS 「70분드라마」의 「사랑한 후에」(김혜정극본 김종혁연출)도 그 흔한 사랑 이야기.
멜로물은 만들기는 쉽지만 「잘」 만들기는 꽤 어렵다고들 한다. 자칫 상투적인 스토리로 흐르다 보면 사랑에 관한 한 파란만장의 경험자들인 시청자의 비판이 매섭기 때문이다.
「사랑한…」가 돋보이는 것은 기존 멜로물하면 떠오르는 삼각관계와 눈물의 「함정」에서 벗어났다는 점이다.
특히 전화는 이 드라마를 끌어가는 중요한 매개수단이자 섬세한 심리묘사와 냉정함을 동시에 유지하게 만드는 장치.
어느날 도서관 사서인 희서(오연수)는 미반납도서를 확인하다가 정원(황미선)의 전화를 받는다. 결혼을 앞두고도 옛 애인을 잊지 못하는 정원은 희서에게 준기의 모습을 묻는가 하면 스웨터를 대신 사줄 것을 부탁한다. 희서는 정원의 요구로 고통스러워하는 준기를 관찰하다 차츰 감정의 동요를 느끼는 자신을 발견한다.
결국 희서는 주말마다 서울역에서 교제중인 인재(조민기)를 만나지만 『우리는 정말 사랑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전화를 사이에 두고 이뤄지는 희서와 정원의 대화는 연민과 부러움 등 시시각각 물결처럼 변하는 감정의 곡선을 그려냈다. 곳곳에 등장하는 소품들도 자연스럽게 감정이입의 수단으로 제 몫을 해냈다. 정원과 준기 등 옛 연인의 체취가 남아 있는 도서관, 서로의 소식을 주고 받던 괘종시계, 준기의 낡은 스웨터…. 여기에 플루트 첼로 하프 등이 빚어내는 음악의 여운은 대사 이상으로 주인공의 다양한 심리변화를 전달한다.
드라마가 후반으로 치달으면서 목소리의 주인공인 정원이 어떤 모습이든 화면에 등장하고 희서와 준기가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결말을 상상할 만하다. 그러나 끝내 눈물도, 삼각관계도, 목소리의 주인공도 등장하지 않는다. 새 애인과 팔짱을 낀 준기와 희서의 스치는 듯한 만남을 통해 『영원한 사랑이 가능한가』라며 사랑에 대해 되물음으로 대신할 뿐이다.
이 드라마의 자랑은 섬세한 묘사 속에서도 냉정함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갑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