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스타]영화배우 한석규, 순백색 감성,총천연색 연기

  • 입력 1997년 8월 11일 08시 10분


《막둥이. 물고기처럼 싱싱한 스물여섯의 청춘. 재개발을 앞둔 허름한 건물안에서 폐허처럼 죽음을 맞이한, 아직도 잠결에 엄마를 부르는 우리들의 막내. 영화배우 한석규(33)에게 영화 「초록물고기」의 막둥이는 「바로 나 자신」이다. 실제로도 4형제의 막내인 그는 거칠지만 순수한 혼을 지닌, 그리고 가족에 대한 애틋함을 잃지않는 막둥이역을 깔끔하게 해냈다. 요즘 뜨고 있는 영화 「넘버3」에서는 뜨내기 깡패로 변신했다. 긴 파마머리에 착 달라붙는 검정바지와 은목걸이를 두른 채 넘버 원이 되기 위해 죽도록 고생만 하는 시시껄렁한 삼류깡패. 막둥이에서 깡패로, 넉넉한 페미니스트 검사에서 야비한 제비족으로…. 길지 않은 배우경력에 비해 연기 폭이 넓고 깊다.》

그의 이미지는 「백지」처럼 열려있다. 얼굴을 종이처럼 구기며 활짝 웃는 소탈함과 부드러움. 그러나 냉혹함과 독기가 번뜩이는 연기도 해낸다.

『연기는 「나」라는 인간 안에 있는 비열함 오기 부드러움 독함 등 복합적인 성격가운데 어떤 면을 배역의 성격에 맞추어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안에 전혀 없는 것을 연기할 수는 없는거죠』

그는 배역을 맡으면 최대한 「평범」해지려고 노력한다. 관객들로부터 『아, 쟤 지금 연기하고 있네』하는 소리를 들을까봐 두렵다. 관객의 몰입과 공감을 흐트러뜨리는 실수는 저지르고 싶지 않다. 성우시절 익혔던 또박또박한 발음과 안정감을 주는 목소리가 도리어 한계라고 느낄 때도 있다.

그렇게 말하는 한석규는 어쩐지 영악해보인다.

대중과 영합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대중 스타」이면서도 대중앞에 함부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TV탤런트 출신이지만 TV를 외면한다. 작품선택도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그러나 자신이 대중과 만나야 할 지점이 어디인지를 정확하게 안다.

그는 사람의 인생에 세 번쯤 찾아온다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부여잡을 줄 알았던 배우다. TV 드라마 「아들과 딸」 「서울의 달」, 영화 「닥터봉」에서 한석규가 맡았던 배역은 원래 그를 염두에 두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얄미울만큼 깔끔하게 배역을 소화하고 실재화해내는데 성공했다.

그런 그의 명민함이 영화 「넘버3」에서 2억원대의 출연료를 받는 당대의 스타로 발돋음하는 밑천이리라.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에서 등만 보이는 병사 역의 초라했던 그가….

한석규는 그래도 얄밉지 않다. 영화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진지하다. 배역을 맡으면 「연출자와 촬영자가 이 작품에서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가」를 이해하고 알아듣기 위해 안간힘을 쏟는다. 사자가 토끼 한마리라도 온 힘을 다해 덤비듯이.

그는 생각이 많다. 취한 상태가 싫어 술은 입에 대지 않지만 담배는 하루에 한 갑씩 피운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싫어해서 가끔씩 훌쩍 소양호에 가버린다. 호젓한 곳에 자리잡고 1주일동안 낚싯대를 드리우다 돌아오곤 한다.

언젠가는 「초록물고기」에서 형제로 출연하기도 했던 둘째형 한선규씨와 함께 영화를 만들어보는 것이 꿈. 그러나 아직은 아니다.

『아직은 연출자로서 들려드릴만한 이야기가 없어요. 늘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내가 살아온 것만큼 연기가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연출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인생의 경험이 쌓이고 세상을 보는 눈이 깊어져야 연출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김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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