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조선왕조실록」
폭군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왕 광해군. 역사속에 남아 있는 그의 이미지는 왕의 자격을 갖추지 못한 결점투성이이자 폭정으로 얼룩진 군주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역사는 대체로 승리하고 살아남은 자들이 쓰는 「당신들의 이야기」이다. 뒤집어 보면 알려진 것과는 전혀 다른 진실이 숨겨져 있기도 하다.
21일 방송되는 「광해군 다시 보기」1부는 폭군이기는커녕 전후의 나라를 다시 세운 개혁군주였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 조선은 질서와 도덕이 파괴되고 민심은 흉흉해져 있었다. 광해군은 이같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나라 세우기」의 일환으로 파주 천도를 제시한다.
새로운 개혁과 수도 방어를 목적으로 한 파주 천도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불타버린 궁과 사고(史庫)의 재건, 새로운 세법(稅法)인 대동법의 시행 등 광해군의 전후복구 사업은 차근차근 진행되었다.
광해군은 세자시절부터 이동정부라 할 분조(分朝)를 이끌며 전쟁중의 민심을 수습해 백성들이 어버이로 따랐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는 왜 후세에 폭군으로 불리게 됐을까.
이 프로는 그 이유를 광해군의 위태위태했던 왕위계승을 둘러싼 정치역학 관계에서 찾고 있다.
가계도로 풀어본 각 정치세력간의 관계, 역모사건을 둘러싼 대북파와 소북파의 권력쟁취전과 인조반정, 그후 광해군이 역사에 폭군으로 남게되는 과정에 대한 설명이 흥미진진하다.
〈김희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