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을 가는 농부가 “이번에는 ‘저 놈’을 확실히 뿌리 뽑아야지”하며 큰숨을 들이켠다. 마침내 잡초 제거라는 특명이 떨어진 것이다. 한쪽에 서 있던 민들레, 식물사회학적으로 잡초에 속하는 그의 마음은 절로 바빠진다. 초스피드의 ‘사랑’과 ‘임신’이 필요한 때다. ‘민들레 홀씨 되듯’ 빠른 출산만이 그의 후손을 약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년 특집으로 7, 8일 밤 11시에 방송되는 ‘MBC다큐스페셜―잡초’의 한 장면.
잡초는 식물 사회의 ‘아웃사이더’다. 풍요를 위해 반드시 제거돼야 하는 이방인이자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드는 ‘불청객’이다.
주변 ‘열강’의 온갖 압박과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는 잡초만의 비법이 1부 ‘우리도 사랑을 한다’에서 공개된다.‘IMF 한파’라고 사람들은 호들갑을 떨지만 언제나 ‘정리해고’의 1순위였던 잡초는 이 겨울에도 초연하다.잡초는 어떻게 위기를 이겨낼까. 그의 생존전략은 밤과 바람을 철저히 이용하는 것과, 벌은 물론 다른 꽃들에게 ‘해로운’ 파리까지 유혹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여름철, 쓰레기가 모인 난지도는 지층의 온도가 섭씨 67도까지 올라간다. 도로 한편의 달맞이꽃은 바로 기온이 뚝 떨어진 밤에 ‘사랑’을 나눈다. 자외선을 반사시켜 ‘중매쟁이’ 벌의 밤길을 인도하는 지혜를 보여준다.
등칡 쥐방울덩굴 둥글레 은방울꽃은 ‘사랑의 계절’에 묘한 생선 비린내를 풍긴다. 벌 대신에 파리 모기 등을 중매쟁이로 선택해 꽃을 피우는 것이다.
이 프로는 쇠뜨기 애기똥풀 은방울꽃 쥐방울꽃 등 50여종에 가까운 잡초들의 사랑을 화면으로 공개한다. 계명대 김종원교수는 “잡초는 주류에 비해 경쟁력은 떨어지지만 적응력이 탁월한 식물군(群)”이라며 “시대와 지역에 따라 잡초의 범위는 달라진다”고 말했다.
2부 ‘버린 땅의 개척자’는 산불로 폐허가 됐던 강원도 고성에서 생명력을 키워가는 잡초들의 삶을 소개한다. 쓸모없고 천덕꾸러기였던 잡초들이 자연복구의 ‘첨병’ 노릇을 해내고 있다.
2, 3일에 걸친 식물의 변화를 10초 내외로 담은 저속촬영과 특수렌즈를 사용한 촬영기법 등으로 식물의 사생활이 꼼꼼하게 소개된다.
〈김갑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