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전국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프랑스 월드컵 지역예선전. 장외(場外)에선 TV3사간 독점중계권 수주전이 뜨거웠다.
출혈을 무릅쓴 경쟁 끝에 중계료는 폭등했다. 당초보다 2.5배나 뛰어올랐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중계권을 따낸 MBC가 밝힌 액수는 50만달러. 반면 KBS SBS 등은 “끼워팔기 조건을 감안할 때 총비용은 1백만달러 정도”라는 주장을 폈다.
KBS가 독점중계한 미국 LA다저스의 박찬호선수 출전경기도 방송사간 치열한 경쟁의 대표적인 사례다. KBS가 작년에 낸 중계료는 30만달러. 그런데 경쟁이 붙게 되자 미국 메이저리그 중계관리팀이 부른 액수는 껑충 뛰었다. KBS와 SBS에 “올해부터 3년간 공동중계료로 4백만달러를 내라”고까지 했다는 후문.
국내 영화배급업체간 외화수입 경쟁도 마찬가지 상황. 과거 영화계는 씀씀이가 크지 않았다. 영화관계자들은 “예전에는 1백만달러가 넘는 외화의 경우 충무로 업자들은 살 엄두도 내지 못했다”면서 “외국 배급업자들 역시 그만한 액수를 부르지 못했다”고 회상한다. 여기에 재벌이 뛰어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주요 외화 수입단가는 어느새 수백만달러까지 치솟았다.
인기 외화를 손에 넣으려는 재벌싸움은 상상을 넘어선다. 삼성은 미국 워너브러더스의 제작사 가운데 하나인 뉴리전시에, 대우는 뉴라인 시네마에 자금을 투자했다. 몇년간 만들 작품들을 한꺼번에 손에 넣겠다는 것.
외화확보 경쟁은 그런 한국을 ‘미국영화계의 봉’으로 만들어버렸다. 작년 미국영화수출협회측이 작성한 ‘영화판매 기준가격표’도 그 사례의 하나. ‘한국 수입사에는 프랑스의 2배, 대만의 8배를 받으라’는 충고가 버젓이 적혀 있어 우리 낯을 뜨겁게 만들었다.
작년 한해만 1만7천여편에 1천8백여만달러어치의 외국 프로그램을 들여온 케이블TV업계도 ‘제살깎기 경쟁’에선 빠지지 않았다.
〈정연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