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제작 뒷얘기]원제는 황동규씨「즐거운 편지」

  • 입력 1998년 2월 10일 08시 43분


허진호감독
허진호감독
‘8월의 크리스마스’의 원제는 황동규의 시 ‘즐거운 편지’였다. 그런데 최진실 주연의 ‘편지’가 떠버리는 바람에 제목을 바꿨다. 8월의 크리스마스라니? 영화속 계절이 여름부터 겨울까지기는 하지만 크리스마스에 관한 얘기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삶속의 아이러니, 슬픔속의 기쁨같은 복합적 의미를 담고 싶어 제작자 차승재씨(우노필름 대표)가 제안한 제목이 ‘8월의 크리스마스’였다. 영화타이틀처럼 이 작품은 국산 멜로드라마 문법에서 보면 도저히 함께 갈 수 없는 칼과 방패로 가 득차 있어 찬찬히 ‘읽을수록’ 흥미롭다. 애초에 허진호감독(35)이 영화의 모티브를 얻은 것은 가수 김광석의 죽음에서였다. 상가에서 마주한 영정이 미소년처럼 활짝 웃고 있었다. 웃으면서 죽음을 맞다니, 본인이 직접 영정사진을 찍으면 그렇게 되려나? 주인공 한석규의 직업은 그렇게 정해졌다. 사진사. 영화의 40%가량은 사진관 안에서 진행된다. 실제 사진관을 헌팅하러 다녔으나 마땅한 곳이 없었다. 군산까지 갔다가 좋은 곳이 없어 지친 제작진이 한 카페에 차를 마시러 들어갔다. 영화가 끝나고 자막에 흐르는 ‘아침햇살 시간여행’이 바로 카페이름이다. 그 카페 창밖으로 보이는, 여름날의 묘한 느낌을 간직하고 있는 차고를 허물고 ‘초원사진관’을 지었다. 처음 얼마간은 정말 새로 생긴 사진관인줄 알고 사진을 찍으러 오는 사람이 많았다. 가족사진을 찍는 장면에 등장하는 사람들도 군산시민이다. 주인공의 죽음을 슬픔보다 진한 미소로 채우기 위해서는 여자가 필요했다. 전혀 극적이지 않고 사소한 일상처럼 만날 수 있는 여자. 그래서 여자의 직업은 매일 주차위반 차량을 사진으로 증명해야 하는 주차단속원이다. 사랑과 죽음이 소재이므로 당연히 한국영화 ‘단골 신’인 울고짜는 장면이 나와야 할 텐데 그것이 없다. 이에 대한 허감독의 얘기. “실제로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봤다. 일반의 예상과 달리 열의 일고여덟은 죽음이 가까워올수록 차분해지고 착해진다고 했다. 나도 뜻밖이었다.” 한석규가 죽고 심은하가 그 사실을 모른 채 사진관을 다시 찾아오는 라스트신에는 눈이 필요했다. 촬영시기는 11월말이었고, 더구나 군산은 거의 눈이 오지 않는다는 지역이었다. 결국 소금을 7백가마니나 뿌렸다. 정말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그 다음. 촬영이 끝나자마자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두 나와 소금을 쓸어담아갔다. 때마침 김장철이 닥쳤기 때문이다. 덕분에 제작진은 청소하는 수고를 덜었다. 허감독은 ‘8월의 크리스마스’를 사랑에 대한 영화라기보다 기억과 세월의 변화에 관한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랑도 시간이 지나면 담담해진다는 것. 이것을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허감독은 ‘말하지 않음으로써 말하는’ 모순적 방식을 택했다. 허감독은 성공했다. 이 영화는 개봉2주만에 전국에서 관객 59만을 모았다. 〈김순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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