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 인허가권 등 방송행정기능이 문화부나 정통부로 옮겨갈 조짐을 보이자 방송학계와 관련단체의 반발이 빗발치고 있다. 이들은 특히 국민회의가 국회의 감독을 받는 방송통신위원회를 설치하겠다는 당초 공약과 달리 방송관할권을 정부에 두어 방송을 좌지우지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며 강한 우려를 표시했다.
한국방송학회(회장 오인환연세대교수)는 12일 “방송에 대한 정부의 영향력을 배제하기 위해 방송행정사무는 새 방송법에 따라 구성될 위원회(가칭 방송위원회 또는 방송통신위원회)가 담당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학회는 특히 6일 긴급 집행위원회를 소집해 회원 1백24명을 대상으로 의견을 조사한 뒤 방송위원회안을 지지하는 1백22명의 명단을 이례적으로 공개했다.
12일 중견방송인들의 모임인 여의도클럽(회장 김도진)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강현두서울대교수도 주제발표를 통해 방송위원회의 위상에 관한 적극적인 입장을 밝혔다. 강교수는 “방송통신위원회는 인허가에 그치지 않고 방송사업관련 이해 조정이나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대비한 정책 마련 등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크리스챤아카데미(이사장 강원룡목사)가 마련한 방송제도개혁안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참가한 홍기선(고려대)교수등은 방송위원회가 방송행정기능을 가져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강목사는 특히 88년부터 3년간 방송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던 경험을 토대로 “위원회의 위상이 법적으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방송독립은 요원하다”며 당시 정부의 방송 통제 사례를 고발하기도 했다.
또 방송개혁국민회의가 18일 주최하는 토론회 ‘방송위원회 위상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도 유사한 주장이 나올 전망이다.
이에 앞서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 등 3개 단체는 4일 성명을 내고 “정통부든 문화부든 방송관할권을 정부 부처에 맡기면 방송 개혁이 원점으로 돌아간다”며 “특별법을 통해 방송통신위원회를 독립 기구로 만들고 이를 중심으로 방송정책을 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방송계의 반발이 드센 것은 새정부가 아직까지도 방송 정책에 대한 구체적 청사진을 밝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방송관할권을 두고 조직개편심의위원회를 비롯해 정통부 공보처 국회 문체공위 통신과학기술위 등이 제각각 다른 입장에서 씨름을 거듭, ‘밥그릇 싸움’만 하고 있다는 것.
게다가 문체공위 가운데 국민회의측 의원들이 문화부 이관을 주장하자 방송계에서는 “정치권이 아직도 방송을 장악하겠다는 구태에 빠져있는 것이 아니냐”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허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