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많은 쪽이 남자일 땐 있을 수 있는 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여자가 연상일 땐 이야기가 다르다. 왠지 평범하지 않은 일로 여겨진다.
요즘 TV에서는 지금까지 잘 다루지 않았던 연상의 여인과의 사랑이 드라마의 소재로 전면에 부각되기 시작했다.
지난해말 방영된 SBS ‘달팽이’를 비롯해 도중에 작가와 연기자가 바뀌어 줄거리가 달라지긴 했지만 MBC의 ‘사랑’이 뒤를 이었다. KBS2에서는 30일부터 월화미니시리즈 ‘거짓말’을 시작한다.
연상의 여인(이미숙 분)에 대한 정박아 청년(이정재)의 연모를 깨끗하게 그린 ‘달팽이’는 양희은의 노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를 유행시키며 잔잔한 여운과 함께 끝을 맺었다.
반면 8년 연상의 여자(김미숙)에 대한 순수한 남자(장동건)의 연정을 다룬 ‘사랑’은 시청률 저조를 이유로 작가를 교체하는 바람에 20대를 겨냥한 트렌디 드라마로 방향을 바꾸었다. 이에 대한 반발로 개설된 PC통신 천리안의 토론방에서는 “사회 통념을 뛰어넘는 애절한 사랑을 서정적으로 그렸으나 이를 참고 봐주지 못하는 ‘보수반동층’의 저항으로 꺾이고 말았다”는 평이 줄을 이었다.
‘거짓말’에서는 사랑을 믿지 않는 5년 연상의 여자(배종옥)와 꿈을 잃어버린 유부남(이성재)과의 사랑이 주축을 이룬다. 이 드라마에서 연상의 여인과의 사랑은 상처를 입은 사람들끼리라도 사랑한다면 모든 것을 넘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장치다.
작가 노희경은 “어긋난 것들도 사랑이라는 굴레안에서는 더이상 빗나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연상의 여자가 ‘젊은 애와 한번 놀아본다’는 식이 아니라 굴곡많은 인생을 살아왔던 여자가 연하의 남자를 사랑하면서 느낄 만한 회한과 번민을 그릴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연상의 여인에 대한 사랑을 소재로 한 이 드라마들이 시청자의 눈을 자극하기 위한 뻔한 속셈이라고 치부해버리기에는 작가들이 탄탄하다. ‘모래시계’의 작가 송지나(달팽이),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의 주찬옥(사랑),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의 노희경(거짓말).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진솔한 속내를 그려내는 탁월함을 인정받은 역량있는 작가들이다.
이들이 연상의 여인에 대한 사랑을 소재로 선택한 것은 식상한 멜로드라마와 차별화하려는 의욕에서 비롯된다. ‘갈등요소가 많은 사랑을 통해 일반적인 사랑을 더 치열하게 그리겠다’ ‘무리없고 편안한 사랑보다 어렵고 안타까운 사랑에서 사랑의 본질은 더 빛을 발할 수 있다’는 의도에서다. 관계를 주도할 수 있을 만큼 강하고 따뜻한 여성들의 등장이 현실에서 이미 이뤄지고 있는 것도 조심스러운 소재를 드라마로 만드는 일을 가능하게 했다.
흔치 않은 소재를 다룬 이 드라마들이 사회적 편견과 통념의 벽을 깨뜨리고 일상에서 사랑을 잊어버린 지 오래인 시청자들에게 묵직한 감동을 전해줄 수 있을지는 좀더 두고봐야 할 것같다.
〈김희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