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달 다큐」조작 파문 확산…『윤리벗어나 시청자 우롱』

  • 입력 1998년 6월 18일 07시 08분


‘드라마인가 다큐멘터리인가.’

야생 수달 아닌 사육 수달을 촬영한 것으로 드러난 KBS 1TV ‘일요스페셜’의 ‘자연다큐멘터리―수달’을 둘러싼 파문이 확대되고 있다.

이는 다큐멘터리가 사실을 인위적 구성없이 촬영해야 한다는 방송 윤리를 벗어났을 뿐 아니라 천연기념물 330호인 수달에 해를 끼침으로써 문화재보호법을 위반한 범법 행위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프로를 연출한 신동만PD가 “TV3사의 자연다큐 제작자들이 이 정도는 하고 있다”고 밝혀 과연 TV자연다큐의 진실이 어디까지인지 의구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서강대 최창섭교수(신문방송학)는 “사육 수달을 사용한 것은 다큐멘터리의 기본을 무시한 조작이며 방송 윤리에서 벗어나 시청자를 우롱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화재관리국측도 “수달이 자연상태가 아니었다면 정부의 허가를 먼저 받아야 했다”면서 “KBS에 질의서를 보낸 뒤 사실로 드러난다면 고발조치할 중대한 사안”이라고 밝혔다.

천연기념물 330호인 수달을 죽이거나 허가없이 점유하면 문화재보호법 20조4항에 따라 2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을 수도 있다.

방송사의 한 관계자는 “인위적으로 촬영 조건을 만드는 ‘세팅 촬영’은 자연다큐 제작자의 공통된 고민이자 숙제”라며 “카메라로 현장을 잡기 어려운 경우 좋은 화면을 위해 세팅 촬영에 대한 유혹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세팅 촬영를 했다는 사실을 밝히려고 해도 시청자의 거부감을 우려한 방송사에 의해 제지당한 경우도 있다”고 털어 놓았다.

그러나 국내 자연다큐멘터리 전문가들은 “사육 수달을 촬영한 것은 세팅 촬영 수준이 아니라 도덕적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에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입장이다.

영국 BBC의 경우 수달을 다루면서 인위적인 촬영 조건을 사용해 찍은 5분 미만의 화면을 사용하고도 편집후기에 그 과정을 시청자에게 알리기도 했다.

프로의 제작 과정이 해당 동물에게 미치는 영향도 검토되어야 한다.

실제로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야생 수달 ‘달미’가 지난해 죽었고 ‘달식이’도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촬영 과정이 수달의 생태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방송가에서는 이번 수달 사건을 계기로 자연다큐에서 허용될 수 있는 세팅 촬영의 기준과 원칙 등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김갑식기자〉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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