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영화가 몰려온다”고 누군가 소리쳤을 때, 사람들은 이런 이미지를 착잡하게 떠올렸을지 모른다.
국내 개봉 일본영화 제2호로 12일 상영될 ‘카게무샤’는 바로 그 사무라이(일본 봉건시대의 무사)들이 스크린 가득 등장하는 일본 시대극이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펼쳐내는 영상은 섬뜩할 만큼 아름답다.
카게무샤(武影者·그림자 무사)는 영주가 전장에 나갈 때 대역으로 쓰려고 데리고 나가는 자신과 비슷한 외모의 인물. 영화는 한 카게무샤를 소재로 영주들간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벌어지던 16세기 일본을 그린다. 그러나 단순한 전쟁극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1백62분간 정(靜)과 동(動)이 교묘히 뒤섞이는 명상적이고 탐미적인 영상은 마치 거대한 벽화(壁畵)를 보고 난 듯한 느낌을 준다. 심지어 수만명이 전멸하는 참혹한 전투장면에서 조차도 감독은 액션을 감춘다. 추상화같은 영상만으로 전투의 격렬함과 참혹함을 짐작케 하지만, 그 비통한 여운은 바닥의 깊이를 모를 정도다.
구로사와 감독이 미국 20세기폭스사에서 6백만달러를 받아 만든 이 영화가 칸 영화제에서 대상을 탄게 80년. 그후 18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명장이 빚어낸 경탄할 만한 장면 장면에는 전혀 세월의 더께가 앉지 않았다.
그러나 이 영화를 비롯한 일본 영화들의 한국내 흥행 능력은 아직 미지수다. 5일 개봉된 ‘하나비’를 찾은 서울 관객은 10일 현재 4만명 정도.영화 자체의 유명도와 ‘일본 영화 개봉1호’라는 호기심에 관객이 쇄도할 것이라던 수입사측의 기대에는 못미치는 수준이다.
그러나 ‘하나비’‘카게무샤’ 등 작품성높은 일본 영화 ‘1진 함대’는 어쩌면 앞으로 개방 폭이 넓어질 경우 쏟아져 들어올 일본 상업영화의 ‘그림자 무사’에 불과할지 모른다. 놀랍도록 함축적이고 정교한 장면 전환을 통해 스토리가 급진전되는 구로사와 감독의 영화처럼 어쩌면 일본 대중문화 개방의 다음 장면에는 진짜 ‘흥행 군단’이 이미 채비를 갖추고 도사리고 있는지 모른다.
〈이기홍기자〉sechepa@do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