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블록버스터「쉬리」]北특수부대장역 최민식

  • 입력 1999년 2월 18일 19시 31분


한국의 게리 올드만. 최민식(37)에게 쏟아지는 찬사다. ‘쉬리’의 개봉 첫날인 13일, 그의 무대인사에 한석규를 능가하는 열렬한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을 만큼.

북한 특수부대 대장 박무영. 반공드라마에서 흔히 그려지듯 소리를 벅벅 지르는 ‘나쁜 놈’이 아니라, 미간에 패인 주름의 골마다 조국과 통일에 대한 고뇌를 안고 있는 역할을 멋지게 해낸 덕이다. 그러나 그는 쑥스러워했다.

“그 인물은 누가 해도 ‘어느 정도’는 되는 역할이예요. 대본과 연출이 탄탄하니까요. 다만 지식인 장교로서 내가 속한 이데올로기에 대한 확신을 지닌 인물을 연기하려고 애썼죠.”

게리 올드만이라니, 영광스럽기 짝이 없다며 손을 내젓는다. 그러나 악역이 살아야 영화가 빛을 발하는 법. 강제규감독의 전작(前作) ‘은행나무 침대’에서도 주인공보다 황장군(신현준 분), 천년이나 징글징글하게 한 여인을 쫓는 악역이 인상깊지 않았던가. ‘쉬리’에서도 최민식의 ‘불’은 주인공 한석규의 ‘물같은 연기’에 불을 붙이기 충분했다.

연기에 참고하기 위해 관계기관의 협조를 얻어 귀순한 북측요원을 만나기도 했다. 길가다 마주치면 돌아볼 생각도 안들 만큼 평범하게 생긴 얼굴이었는데, 얘기 중 옆자리에서 휴대전화 벨이 울리자 홱 돌아보는 눈에 살기가 등등하더란다.

“정말 처음보는 눈빛이었어요. 연기로는 도저히 표현못할 정도로….”

‘쉬리’에서 비로소 한석규 못지않은 관심을 모으게 됐지만 사실 최민식은 한석규의 대학(동국대 연극영화과) 선배다. 94년 TV드라마 ‘서울의 달’에 함께 출연한 이후 늘 한석규에 가려져 손해를 본 것이 아쉽지 않느냐고 짐짓 떠보았다. 심지어 이번 박무영 역할도 한석규가 은근히 욕심을 냈었으므로. 그랬더니 최민식은 “석규와 나는 누가 손해를 보고 말고 하는 사이가 아니다”고 정색을 했다.

“오히려 서로 돋보이게 하는 점이 있겠죠. 연기를 놓고 노골적 토론을 하니까요. 연기자의 경쟁이 전체 작품에 해가 되지 않게 하는 것, 그게 ‘넘버 스리’와 ‘넘버 원’의 차이가 아닐까요.”

〈김순덕기자〉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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