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쉬리’를 노리는 한국 영화의 새 카드들이다. 모두 20억원이상의 제작비와 현란한 특수효과, 다양한 아이디어와 쟁쟁한 캐스팅 등 흥행 요소로 무장한 이른바 ‘한국형 블록버스터(대작)’.
▼‘쉬리’만 있나 ▼
4월말부터 7월까지 차례로 개봉될 4편 모두 국내 영화계에서 대작의 기준으로 인식돼온 순수제작비 20억원을 가볍게 넘어섰다. 지난해에는 ‘퇴마록’만이 20억원을 넘겼었다. ‘쉬리’는 23억원.
4월말 개봉되는 신은경 김태우 주연의 ‘건축무한 육면각체의 비밀’은 이상(李箱)의 시에 담긴 비밀을 풀어가는 다섯 젊은이의 모험을 그린 미스테리물.
한불 합작영화인 ‘이재수의 난’은 1901년 제주민란을 이끌었던 이재수의 일대기를 담고 있다. 이정재 심은하 주연으로 프랑스 칸 영화제를 통해 국제무대에서 먼저 선보인뒤 6월경 국내 개봉할 예정이다.
‘자귀모’와 ‘유령’은 기발한 아이디어로 눈길을 끈다. 김희선 이성재 주연의 ‘자귀모’는 ‘자살한 귀신들의 모임’을 줄인 말로 귀신이 이승과 저승을 오가면서 벌이는 해프닝을 다루고 있다. 7월말 개봉될 최민수 정우성의 ‘유령’도 국내 최초로 핵잠수함을 소재로 삼아 잠수함 미니어처의 제작 등 특수효과에만 7억원이상을 들였다.
▼왜 대작인가 ▼
이같은 대작의 출현에 대해 영화평론가 이성욱은 지난해까지 주류 장르였던 저예산 멜로물과 코믹물의 감소에서 찾는다. 개인적 감성을 두드리는 이들 장르가 유행한 뒤에는 알수 없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을 담은 공포물과 스릴러가 오는 것이 영화계 흐름이라는 것이다. 또 미스테리, 판타지물 등은 특수효과의 사용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종전 제작비의 ‘심리적 한계선’이었던 20억원이 무너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쉬리’의 그림자 ▼
제작사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다. 우선 영화를 선보일 극장을 구하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쉬리의 그림자’가 짙기 때문이다.
2월13일 개봉된 ‘쉬리’는 서울의 개봉 상영관 65개중 절반 가까이 점유하고 있다.제작사 계획대로 5월말까지 상영하면 스크린쿼터(한국영화 의무상영일수 1백6일)를 ‘쉬리’ 한편이 차지하게 된다.
무엇보다 영화의 완성도를 평가하는 잣대가 돼 버린 ‘쉬리’의 존재가 부담스럽다. 이에 제작사들은 ‘쉬리’ 바람을 피해 개봉을 늦추거나 CG 등 특수효과에 추가비용을 들이면서 완성도를 끌어올리느라 분주하다.
영화평론가 강한섭은 “앞으로 나올 영화들은 평년이라면 충분히 화제작으로 평가받을 만한 대작들”이라면서도 “‘쉬리’가 평년 한국 영화관객의 40%이상을 가져간 상태에서 흥행성공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갑식기자〉gs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