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세트를 진짜처럼』추세

  • 입력 1999년 4월 25일 19시 38분


한국영화 세트가 달라진다. 어지간한 대규모 영화가 아니면 겉모양만 흉내내는데 그치곤 했던 세트를 요즘은 점점 더 ‘진짜’처럼 정교하게 만드는 추세다. 아예 튼튼하게 지어 관광코스로 활용하는 경우도 늘어났다.

전북 남원에서 촬영할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 다음달 3일 크랭크인을 앞두고 요즘 남원 관광단지안 1천평의 부지에서는 야외세트인 ‘춘향의 마을’을 짓는 공사가 한창이다. 제작사인 태흥영화사는 촬영 뒤 이를 남원시에 기증할 계획.

연못을 파고 2백66평 규모의 옥사, 7채의 집을 짓는 등 아예 마을을 통째로 만드는 큰 공사다. 장독 목칼 곤장 등 집과 옥사에 들어갈 소품만 2.5t 트럭 25대 분량. 세트제작과 소품 마련에 왠만한 영화 1편 제작비인 6억5천만원 가량을 들인다.

‘춘향뎐’세트 제작을 맡은 MBC 미술센터는 ‘영원한 제국’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꽃잎’ ‘아름다운 시절’ ‘내 마음의 풍금’ 등의 영화 세트를 만들어 온 베테랑 팀. 고증이 까다로운 역사물에 강해 최근 촬영을 끝낸 박광수 감독의 ‘이재수의 난’에서 제주도 야외세트도 제작했다.

지금까지 가장 규모가 큰 야외세트는 태흥영화사가 90년 ‘장군의 아들’을 만들때 경기 벽제에 지은 3천평 크기의 세트. 그러나 이 세트가 아파트 부지로 팔려 현재 최대세트는 경기 양수리 종합촬영소에 있는 ‘신장개업’(제작 황기성사단)세트다. 3억5천만원을 들여 1천평에 32채의 건물이 들어선 이 세트 역시 관광코스로 쓰일 예정.

세트의 비중이 커진 이유는 한국영화의 장르가 다양해진 경향과 관계가 있다.

“한국영화가 멜로영화 일색에서 벗어나 시대물 공상과학 스릴러 등으로 다양해지면서 ‘그럴듯 함’을 극대화하기 위해 세트 제작에 거액을 투자하게 됐다.”(황기성사단 기획실장 나선녀)

일례로 가상역사 미스테리물인 ‘건축무한 육면각체의 비밀’은 영화의 비밀이 밝혀지는 가상공간인 ‘육면각체의 방’으로 높이 12m, 직경 15m 크기의 원형 돔 세트를 만들었다. ‘육면각체의 방’은 커다란 바위가 굴러오고 땅이 갈라지는 효과를 낼 특수장치들을 갖춘 첨단 세트.

또 대형 스릴러영화인 ‘유령’은 아예 촬영의 85∼90%가 핵잠수함 세트안에서 진행됐을만큼 세트의 비중이 크다. 실제 잠수함에 쓰이는 복잡한 부품들이 빼곡히 설치된 이 세트는 다음달초 잠수함이 어뢰에 맞아 침몰하는 마지막 장면을 촬영할 때 부서질 운명이다.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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