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영화팬들은 다양한 ‘메뉴’를 놓고 고민해야 할듯 하다.
‘쉬리’로 한껏 자존심을 높인 우리 영화 6편이 할리우드의 화제작 8, 9편에 맞서 잇따라 개봉되기 때문이다.
여름철은 극장가의 최대 성수기. 수천만달러 이상의 제작비를 투입하는 할리우드 작품들은 이 시기에 몰려 개봉돼 왔다.
그동안 우리 영화들은 아예 이 시기를 피해 설이나 추석 대목을 노렸다.
그러나 올해는 사정이 다르다. ‘간첩 리철진’ ‘이재수의 난’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자귀모’ ‘용가리’ ‘링’ 등 우리 영화가 할리우드 흥행작들과 ‘맞불작전’에 나섰다. 일명 ‘토종 반란’인 셈.
이 반란은 ‘링’과 ‘용가리’를 뺀 네 작품의 투자사이자 배급사로 나선 시네마 서비스가 시도한다.
“5월부터 여름까지 이어지는 최대 성수기를 포기한 채 우리 영화시장의 규모를 키우기는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제는 정면승부다. 할리우드 흥행작이라고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고, 우리 영화도 공들여 만들었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밀리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강우석대표)
15일 개봉하는 ‘간첩…’이 첫 주자. 상대는 미국 박스오피스에서 올해 흥행 1위를 기록중인 SF액션물 ‘매트릭스’다. ‘간첩…’은 슈퍼돼지 종자를 훔치기 위해 남파된 간첩을 다룬, 기발한 아이디어의 코미디물이다.
6월에는 제주민란을 영상으로 옮긴 ‘이재수의 난’과 이집트 미이라의 부활을 다룬 스릴러 ‘더 머미’가 5일 동시에 뚜껑을 연다.
6월26일 개봉되는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 에피소드1―보이지 않는 위험’은 미국서 ‘타이타닉’의 기록을 깰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는 올해 최대 화제작. 그러나 ‘스타워즈…’의 ‘위협’에도 우리 영화는 쉬지 않는다. 같은날 안성기 박중훈 장동건의 주연의 액션물 ‘인정사정 볼 것 없다’가 개봉된다.
‘토종’과 할리우드의 대결은 7월17일 ‘자귀모’‘용가리’와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로 절정에 이를 전망이다.
영화평론가 유지나교수(동국대)는 “한국영화가 여름시장에 눈을 돌린 것은 반가운 현상”이라며 “‘쉬리’의 성공사례도 있고 멜로물 일색이던 장르도 다양해지면서 완성도에도 자신감을 가졌다는 증거”라고 해석했다.
영화계에서는 투자―제작―배급으로 연결되는 영화공급 시스템의 구축을 또 다른 이유로 꼽는다.
특히 시네마서비스의 경우 독자적인 배급망을 갖춰 영화를 완성해놓고도 극장을 잡느라 고생하지 않게 됐다.
덕분에 개봉 일자를 미리 정하고 고객의 구미에 맞춰 돈과 시간을 들이는 기획제작이 가능했다는 분석이다.
〈김갑식기자〉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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