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듯 가족은 가족 자체의 생존을 위해 비밀을 숨기고, 가족이 해체하지 않는 방향으로 신화들을 만들어낸다. 바로 전통적인 ‘가족 신화’라는 것이다. 아이를 낳으면 부부사이가 좋아진다거나, 열손가락 깨물어 안아픈 손가락 없다거나, 가족간의 비밀과 상처는 덮어두는 것이 상책이라는 것 등이 신화에 해당한다.
가족간의 문제와 의사소통 방식을 매우 미묘하게 잡아낸 영화 ‘비밀과 거짓말’로 96년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감독이 마이크 리다. 이 영화는 영국의 노동자계급 가족을 등장시켜 가족간의 비밀이 어떻게 밝혀지고 수용되는지를 이야기해준다.
주인공 신시아는 청소부로 일하는 뿌루퉁한 딸 록산느와 함께 하루하루 생계를 꾸려나가기 바쁘다. 어느날 낯선 여자로부터 전화 한통을 받고 신시아는 대경실색을 한다. 어린시절 몰래 낳아서 버린 딸 홀텐스가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게다가 홀텐스는 록산느와 달리 흑인이었던 것.
마이크 리 감독은 록산느보다 어미가 버린 딸 홀텐스를 더 지적이고 성숙한 여성으로 그려낸다. 또 가족간의 상처를 덮어두는게 상책이라는 신화가 어떤 허구성을 지니고 있으며 얼마나 가족들의 대화를 단절시키는지 보여주고 있다.
사실 이 영화에서 가장 많이 비추어지는 것은 신시아의 동생이 운영하는 사진관을 찾는 가족들이다. 가족사진은 활짝 웃는 모습들을 담고 있지만 막상 상처란 바로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나온다는 것, 마이크 리 감독은 이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증오’로 일약 프랑스의 천재감독으로 떠올랐던 마티유 카소비츠. 96년 ‘암살자(들)’로 칸에 참가했던 그는 황금종려상을 받지 못하자 “내가 왜 마이크 리 감독의 들러리 역할을 해야하느냐”고 공개적으로 불평을 한 바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칸 심사위원들은 사회적 문제인 ‘암살자(들)’보다는 가족간의 이야기인 ‘비밀과 거짓말’에 더 점수를 주었던 듯. 이렇듯 가족이란 만국에 어필하는 가장 근원적인 주제인지도 모르겠다.
심영섭(영화평론가·임상심리학자)kss1966@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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