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쿼터가 그렇게까지 절박한 사안일까. 국내 영화흥행 신기록을 세운 ‘쉬리’의 강제규 감독(37), 97년 한국영화 흥행1위인 ‘접속’을 제작한 명필름의 이은 대표(38)가 긴급 대담을 나눴다. 두사람이 대담을 나눈 21일, 박지원 문화관광부장관은 “최소한의 신축성은 필요하다”고 말해 스크린쿼터가 축소될 수도 있음을 처음으로 시사했다.
▽이은〓박장관의 발언은 문광부가 최선을 다해 협상에 임할 의지가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국익을 위해 한미투자협정을 타결해야 한다지만 한 주력산업을 포기하면서 맺는 한미투자협정이 과연 국익을 위한 것일까요. 지난해 대통령과 국회, 장관이 모두 스크린쿼터를 현행대로 유지하겠다고 공언했는데도 이번에 양보한다면 문화주권을 잃는 일을 자초하는 셈입니다.
▽강제규〓정부는 스크린쿼터 축소의 대안으로 막대한 영화지원책을 고려하는 듯한데 호주 등 다른 나라의 경우를 보더라도 스크린쿼터가 없는 모든 나라에서 영화진흥책이 다 실패했습니다. 70년대후반 자국영화의 흥행이 미국영화를 앞질렀던 브라질에서도 스크린쿼터가 축소되기 시작한뒤 영화산업이 붕괴했습니다.
▽이〓영화인들이 스크린쿼터 폐지뿐 아니라 축소에도 반대하는이유는,축소는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이 인정한‘영화는문화적인예외조항’이라는원칙을미국과의협상에서 포기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상영일자의일부축소는 계속적인 축소를 가져오고 결국 도미노현상처럼 미국의 요구앞에 제도 자체가무너지게될것입니다.
▽강〓일부에서는 ‘스크린쿼터 없어도 영화만 잘 만들면 되잖느냐’고 하는데 이는 영화 시장의 특성을 전혀 모르기 때문입니다. 스크린쿼터가 없어지면 한국영화 시장 자체가 사라집니다. 미국 영화 직배사의 막강한 배급력은 스크린쿼터가 없으면 절대우위를 갖게 될 겁니다. 현재 5주 상영이 가능한 한국영화도 불과 1,2주밖에 상영할 수 없게 되죠. 유통이 무너지고 시장이 없어지면 한국영화는 망합니다.
두사람은 스크린쿼터가 없었다면 ‘쉬리’나 ‘접속’은 만들 수도, 상영할 수도 없었을 거라고 입을 모았다.
▽강〓‘쉬리’가 4개월 상영됐는데 스크린쿼터가 없었다면 절반도 못틀었을 거예요. 그러면 투자환경이 위축되게 됩니다. 10억원을 들여도 원금 회수가 어려운 시장에서 누가 20억,30억원씩 영화에 투자하겠어요. 투자가 위축되면 영화의 질이 떨어지고, 관객이 줄고, 영화산업은 괴멸하는 수순을 밟게 될 겁니다.
▽이〓22억원이 든 ‘쉬리’의 제작도 그 이전의 한국영화들이 잇따라 흥행에 성공하고 경쟁력이 높아져서 가능했던 일 아닙니까. 현재 영화에 투자하는 금융자본들도 스크린쿼터 축소가 결정되는 즉시 모두 철수하게 될 게 분명합니다.
▽강〓지금까지 흥행 가능성이 있는 할리우드 영화가 스크린쿼터때문에 한국에 못들어온 경우는 없었어요. 현행 스크린쿼터 146일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영화인들의 요구는 할리우드 영화를 막자는 게 아니라 관객들이 ‘한국영화를 선택할 자유’를 보장하자는 주장입니다.
▽이〓한국영화의 배급력이 탄탄해지고 지금 25%인 시장점유율이 40%를 넘기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볼 수도 있겠지요. 영화인들도 보다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어떤 정부도 강대국의 강제에 밀려, 또는 정부가 나서서 자국의 문화를 말살할 권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강〓영상산업이 포기해도 좋은 하위산업이라면 경우가 다르겠지요. 그러나 21세기의 주력산업이라는 영상산업을 포기한다면 미래 한국의 경쟁력은 어디서 나올 수 있겠습니까.
두사람은 “스크린쿼터가 흔들리면 한국의 영화산업은 죽을 수밖에 없다”며 “삭발이라는, 비문화적인 수단을 동원하게 됐지만 이보다 더한 일이라도 하겠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