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1TV ‘왕과 비’(주말 밤9·40)의 세조 역 임동진(55)이 목욕탕에 ‘납시면’ 자주 듣게 되는 말이다. 극중 세조는 온몸에 퍼진 부스럼으로 고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조는 4일 방영분에서 죽은 조카 단종의 환영에 시달리다 내시의 품에 안겨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한다. 이 드라마가 왕에서 비로 무게중심을 옮겨 올해말까지 방영됨에도 불구하고 그는 “세조가 죽자 (현실 속의) 나도 따라 죽었다”고 말했다.
“‘몹쓸 사람’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습니다. 연기자에게 그 말은 사실 칭찬이지요. 나도 그 인물에 푹 빠져 있었는데 막상 세조란 인물이 나를 떠났다고 생각하니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1주일 중 5일을 촬영에 매달리며 외모(분장)와 말(대사)은 물론 세조의 삶을 꿰뚫어보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여온 것을 짐작케 하는 말이다.
‘왕과 비’는 방영 초기 수양대군의 집권을 왕권 강화로 미화하며 역사를 왜곡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세조, 아니 분신(分身)을 위한 변명일까. 임동진의 의견은 달랐다.
“세조는 공이 많은 인물입니다. 자료에는 눈물이 많고 음악을 좋아했다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인간적이기도 했고. 그러나 집권을 위해 어린 조카를 죽음으로 내몰아 긍정적인 면은 평가받지 못했죠.”
말년 세조의 부스럼에 대한 말도 많았다. 한 나라의 왕인데 저렇게까지 흉측하고 나약하게 묘사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부스럼은 세조가 지은 원죄의 상징이죠. 그래서 분장 담당자에게 부스럼을 늘려 달라고 졸랐습니다.”
극중 세조는 3개월간 부스럼에 시달렸지만 실제 임동진은 고무풀과 전쟁을 치렀다. ‘인조 부스럼’의 재료는 라텍스라는 고무풀. 촬영을 마친 뒤 매번 석유로 씻어내야 했다.
“이제 아쉽지만 새로운 인생을 준비해야죠. 작품이 끝날 때 죽었다 새 작품으로 다시 태어나는 게 배우의 운명 아닙니까.”
연기경력 35년. 선굵은 연기와 강건한 이미지를 지켜온 그도 최근 막내딸 예원이 탤런트(SBS드라마 ‘파도’)로 데뷔했다는 대목에선 얼굴을 활짝 펴며 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김갑식기자〉gs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