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아트비전 제작1부에서 무대 세트의 도배를 담당하는 이용옥씨(53)는 사극 이야기만 나오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KBS1 ‘왕과 비’ 녹화 때 ‘출동’하는 문짝만 2백개가 넘는다. 여기에 합판으로 만든 크고 작은 무대용 세트가 60∼70개.
이 드라마의 녹화가 있는 날이면 도배사인 그와 세트를 조립하는 8명의 대도구팀은 합판을 상대로 세트를 만들고 벽지와 창호지를 바르는 등 7,8시간의 전투를 치러야 한다. TV 화면에서 그럴듯하게 보이는 구중궁궐내 왕의 침소나 번듯한 양반집은 이들의 땀의 산물이다.
“그래도 방영중인 작품은 찢어진 벽지를 뜯어내고 도배하면 일이 끝나죠. 새로 시작하는 드라마라도 있으면 눈코뜰 새가 없습니다.”
무대 세트가 단조로운 오락프로나 토크쇼 등은 작업이 쉽지만 드라마는 손이 많이 가는 편이다.
세트도 ‘대접’이 다르다. 60, 70년대 가옥은 주로 신문지나 싸구려 벽지로 궁색한 분위기를 낸다. 그러나 부잣집의 경우엔 실크 벽지를 바르고 천장까지 말끔하게 마무리해야 하는 등 부담이 늘어난다.
“일반 도배와 크게 다른 점은 없지만 방송가 도배는 속도가 생명입니다. 기존 세트를 뜯어내고 다시 설치하는 과정이 늦어지면 녹화가 진행될 수 없죠. KBS2 ‘가정오락관’ ‘TV는 사랑을 싣고’처럼 무대 세트가 간단한 프로는 1시간반만에 집을 부수고 도배까지 마친 새 집 한채를 뚝딱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방송사에서 도배경력은 15년. 그는 “직업병인지 모르지만 이사를 가도 내 집 도배는 절대 하지 않는다”며 웃는다.
〈김갑식기자〉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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