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리뷰]연예인 언제까지 괴롭힐건가?

  • 입력 1999년 7월 12일 18시 34분


“내가 실험용 쥐인가.”

탤런트 이제니가 잔뜩 겁먹은채 한 말이다. 11일 밤 방영된 KBS2 ‘슈퍼 TV 일요일은 즐거워’의 ‘도전 여걸 파이브’ 코너.

이제니는 8m 높이에서 줄을 타고 내려와 수심 5m 위에 떠 있는 대형 튜브속으로 뛰어야 한다. 다음 순서인 탤런트 안문숙도 공포에 질려 있다. 그런데 진행자들은 배꼽을 잡는다.

이처럼 스타를 독안에 든 쥐처럼 고통을 주고 시청자들의 웃음을 유도하는 프로가 주말 저녁 시간대에 TV 3사가 약속이나 한듯이 경쟁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공영방송KBS는‘슈퍼 TV…’의 ‘스타 공포데이트 돌아보지마’를 비롯해 2TV ‘자유선언 오늘은 토요일’의 ‘공포퀴즈대결’ 등을 내보낸다. SBS는 ‘슈퍼스테이션’의 ‘흉가에서의 하룻밤’과 ‘기쁜 우리 토요일’의 ‘MC 대격돌’‘스타의 만찬’, MBC는 ‘일요일 일요일밤에’의 ‘소방훈련 스타 119’를 방영한다.

이들 프로가 가학적인 구성과 스턴트맨의 묘기를 방불케 하는 내용으로 스타를 괴롭힌다는 지적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연예인이 다칠 위험이 있다” “공포에 질린 연예인들을 보고 웃으라는 것은 비윤리적이다” “가학적이고 변태적이다”는 비판이 그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을 겨냥한 방송사들의 무리수는 전혀 사라지지 않는 형편이다.

급기야 지난달 28일 충북 단양에서 SBS ‘기쁜 우리 토요일’에 출연, 패러글라이딩을 탔던 미스코리아출신 손모씨(22)가 목뼈에 골절상을 입었다. 그런데도 연출진은 “3주간의 입원 기간을 포함해 2개월 정도 치료받고 안정을 취하면 충분히 회복할 수 있다”고 말할 뿐 사고 경위에 대해서는 도덕적 책임을 느끼지 않는다는 투다.

이처럼 다치지 않는 한 출연섭외를 받는 연예인이 이들 프로를 거부하기는 힘든 노릇이다. 한 출연자는 “거절하려 해도 방송사와의 관계가 틀어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약자의 입장을 하소연했다.

방송위원회는 이런 프로에 대해 매년 제재를 내리고 있다. 올해도 ‘돌아보지마’ 등이 경고를 받았지만 시청률 경쟁에 빠진 방송사에는 솜방망이일 뿐이다. 다만 ‘소방훈련…’은 11일로 폐지됐다. 남의 고통을 웃음거리로 삼는 ‘연예인 괴롭히기’프로는 사라져야 한다.

〈허 엽기자〉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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