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추운 겨울날 따뜻한 홍차 한 잔과 과자 한 조각으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고, 과거의 어느 한 시기를 선명하게 되살려낸다.
▼ 영상 동화처럼 예뻐 ▼
수년간 ‘불법 비디오’로 음지를 떠돌다 20일 개봉될 일본영화 ‘러브 레터’역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가는 기억에 관한 영화다.
말랑말랑한 감수성,예쁜 영상의 이 영화가 마니아들 사이에 신화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힘은 보는 이에게 굳게 잠긴 과거의 빗장을 풀게 하고 기억의 수문을 열어준다는 점이 아닐런지.
영화는 여주인공 히로코가 눈위에 누워 가만히 숨을 참고 있다가 일어나면서 시작된다. 그는 겨울 산에서 조난당한 연인 이츠키가 차가운 눈 속에서 죽어가며 느꼈을 심정을 알고 싶었던 것일까.
죽은 연인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히로코는 이츠키의 중학교 앨범에서 옛 주소를 발견하고 천국에 보내는 심정으로 편지를 쓴다. “잘 지내나요? 전 잘 지내요.”
▼ 두여자의 과거 회상 ▼
놀랍게도 답장이 온다. 답장을 보낸 이는 숨진 이츠키와 동명이인인 중학교 여자 동창생. 히로코의 실수로, 죽은 남자를 사이에 두고 두 여자가 과거를 찾아 떠나는 추억 여행이 시작되고, 이들은 그 여정에서 각각 새로워진 자기 자신과 만난다. 히로코는 죽은 연인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난 자신을, 여자 이츠키는 미처 몰랐던 소중한 추억을 발견하게 된다.
▼ 여주인공 1인 2역 ▼
느린 속도로 전개되던 영화는 여자 이츠키가 남자 이츠키를 기억해내는 과정의 코믹한 에피소드들에 이르러 활기를 띤다.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복선으로 활용하는 등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절묘하고 삶의 가까이에 있는 죽음에 대한 묘사는 몽환적이다.
순정만화처럼 소녀적인 취향이 짙다. 하지만 젊은 시절의 순수함과 영롱한 기억들을 떠올리게 만들고,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훈훈해지는 경험을 안겨주는 영화다. 히로코와 여자 이츠키의 1인2역을 맡은 여배우 나카야마 미호의 청순함이 돋보인다. 모두 관람가.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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