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층’도 과거와 현재,미래를 오가며 가상세계와 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SF영화. ‘매트릭스’ 등 비슷한 소재를 다룬 영화들보다 늦게 나온 탓에 신선도가 좀 떨어진다.
그러나 살인 혐의를 받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미스터리 스릴러의 방식을 취하고 있어 이야기를 좇는 재미가 아주 없진 않다.
컴퓨터회사 중역인 더글러스 홀(크랙 비에르코 분)은 사장 풀러(아민 뮐러 스탈)를 살해한 범인으로 몰린다. 풀러는 의식을 이동시켜 가상현실로 시간여행을 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었다. 풀러의 죽음에 의구심을 품은 홀은 의혹을 풀기 위해 직접 가상세계에 들어간다.
그러나 상자 속의 상자처럼, 홀이 풀러의 죽음을 둘러싼 수수께끼 하나를 풀면 또 다른 수수께끼가 기다리고 있다. 현실과 가상세계의 경계는 점점 더 모호해져 간다.
무난한 오락영화지만 ‘매트릭스’의 현란한 액션,‘엑시스텐즈’의 기괴한 스타일처럼 뭐 하나 돋보이는 개성이 없다는 게 약점.
첫 장면은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명제로 시작되지만 심오한 성찰같은 게 담겼으리라 기대하면 오산이다. ‘인디펜던스 데이’‘고질라’를 만든 제작자 롤랜드 에머리히와 그에게서 감독수업을 받은 조셉 러스낙 감독은 평범하고 가벼운 SF영화를 만드는 데에 그쳤다.
현실의 암울함을 차갑고 푸르스름한 색상으로 표현하는 것도 이젠 너무 일반화된 방식이다. 등장인물들이 가상현실로 이동할 때 화면을 물들이는 녹색광선은 조악한 느낌마저 준다. 27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