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오락물은 아예 연출자가 시청자의 웃음을 유도하기 위해 ‘카메라를 의식한 O씨’ 등 코믹한 내용의 자막을 넣는 경우가 많고 뉴스 프로에도 기사마다 신문의 제목처럼 자막을 다는 경우가 흔하다. 교양 프로에서도 인터뷰가 제대로 됐는데도 자막을 자주 넣는다.
국내 TV의 자막 처리가 잦은 것은 일본 방송의 영향 때문이라는 게 방송가의 설명. 일본 N HK는 짧은 뉴스에 자막을 넣으며, 후지TV 등 민영 방송에서도 오락물 화면에 자막 처리를 자주 한다. 이는 만화의 영향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KBS 등 방송계 내부에서 자막을 자제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방송은 영상과 그림으로 사실이나 상황을 전달하는 매체인데 문자를 너무 많이 사용하다 보면 시청자가 화면의 세심한 장면을 감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마치 영화를 관람할 때 번역 자막을 보느라 영상을 놓치는 경우와 유사하다.
실제 미국에서는 외국인을 인터뷰하더라도 번역 자막을 사용하지 않고 더빙하며 독일에서는 기자의 이름이나 장소 등에 제한해서 사용하고 있다.
KBS 보도국의 이명구 편집주간은 “방송은 화면과 음성으로 시청자들에게 다가가야 하므로 최근 자막 처리를 제한하고 있다”며 “다만 인터뷰를 하기 어렵거나 청각 장애인을 위해 자막이 불가피한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SBS의 최희준 기자도 자사의 노보를 통해 자막의 자제를 주장했다. 최기자는 “TV는 그림과 음성의 매체이지 문자의 매체가 아니다”며 “시청자가 눈으로 자막을 따라가다 보면 화면을 놓친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탐사나 추적 프로에서 인터뷰를 요약해 자막처리하는 것은 말하는 사람의 의도를 왜곡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손용 중앙대 교수는 “음성이나 영상보다 문자에 대한 기억이 더 오래 가기 때문에 자막이 과도하면 영상의 몫이 줄어든다”며 “자막에 의존할수록 제대로 된 화면과 영상을 구성하지 못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허 엽기자〉h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