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 시장점유율 40∼50%로 절정을 이루다 기나긴 침체에 빠졌던 한국영화가 90년대 들어 부활하기 시작하더니 올해에는 욱일승천의 기세로 맹위를 떨쳤다.
할리우드 영화의 세계지배가 더욱 공고해지고 있는 90년대말, 자국 영화의 시장점유율이 40%에 육박하는 나라는 세계에서 미국을 제외하고는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
▼점유율 40% 육박…작품성은 미흡▼
올해 상업적으로 대성공을 거둔 한국영화들의 공통점은 20억원 이상의 제작비를 들인 ‘한국형 블록버스터’들이라는 점. ‘쉬리’를 비롯해 ‘유령’‘자귀모’ ‘용가리’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등 대작 영화들이 모두 서울에서 30만명 이상의 관객을 끌어모았다.
단 올해 흥행순위 2위를 기록한 ‘주유소 습격사건’은 예외. 관객의 눈을 끄는 톱스타도 없고 12억원의 제작비를 들여 알뜰하게 만든 이 영화는 서울에서 96만명의 관객을 모아 역대 한국영화 흥행 사상 3위를 차지하는 이변을 낳았다.
영화평론가 강한섭 교수(서울예대)는 이에 대해 “대단히 새롭고 도발적인 영화를 원하는 관객들의 욕구가 폭발한 결과로 그간 충무로가 관객의 요구를 제대로 수용하지 못해왔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면서 올해 가장 주목해야 할 현상으로 꼽았다.
▼외화 상대적 약세…'미이라'가 1위▼
한국영화 장르의 다변화도 올해의 긍정적인 현상. 멜로 드라마뿐만 아니라 코미디(간첩 리철진) 액션(쉬리) SF(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 스릴러(텔 미 썸딩)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이 잇따랐다.
반면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제외하고는 작품성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영화는 거의 없었고 ‘작가 영화’의 설 자리는 더욱 좁아졌다. 영화평론가 전찬일씨는 “상업적인 기획영화의 성공이 긍정적이긴 하지만 영화 제작이 지나치게 상업 논리에 의해 좌우되는 점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한국영화의 약진에 비한다면 올해 외국 영화의 국내 흥행성적은 저조한 편.
그러나 컬럼비아 트라이스타 영화사 구창모 부장은 “대개의 할리우드 직배사들의 매출이 지난해에 비해 크게 뒤떨어지지 않는다”면서 “한국영화의 성공이 시장 자체의 크기를 키웠기 때문에 할리우드 영화에도 긍정적인 환경을 조성했다”고 평가했다.
올해 국내에서의 외국영화 흥행 1위는 ‘미이라’.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이 영화의 흥행 성공은 액션 어드벤처 영화에 대한 한국인들의 선호를 다시 한 번 실감케 했다.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