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지만 알싸한 향내의 박하사탕을 먹어본 적이 있는가. 우둘투둘한 표면에 자칫하다간 입안이 헐어 버리고 한 입에 깨물기엔 버거운 덩치,낡은 기억의 틈바구니에 꽂힌 표백제 색깔. 2000년 새해 벽두부터 잊혀졌던 박하사탕을 다시 우리 앞에 내미는 사나이가 나타났다.
▼순수로의 회귀 꿈꾼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박하사탕’은 한 남자의 씁쓸하고 알싸한 기억을 한국 현대사라는 기나긴 철로에 태워 뒷걸음치는 시간여행이다. 그곳에 무엇이 있었던가. 99년의 속물주의에 파멸당한 중년 남자는 87년 고문경찰이 되어 나타나고, 79년 사진사가 되기 바라던 청년은 80년 광주에서 그 꿈을 잃어 간다. 살인, 배신, 탐욕, 쾌락, 열정, 저항. 그 질곡의 터널을 거쳐 이창동의 영화는 늘 더 순수했던 시절로의 회귀를 갈망한다.
이러한 회귀 본능이 비애스러운 까닭은 이들을 몰아낸 우리 사회의 광폭한 탐욕과 폭력성 때문이다. ‘초록 물고기’와 ‘박하사탕’은 현실에서 노획될 수 없는 부재의 공간이자 시간이다. 철로변과 신도시 주변부까지 꼼꼼한 시선을 보내며, 그는 우리에게 ‘이제 우리가 다시는 가질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하고 질문한다.
▼소품마다 의미와 상징▼
이창동의 등장으로 한국 영화사는 자칫 대가 끊길 뻔한 리얼리즘의 적자를 얻었다. 93년 당시 나이 사십이 넘어 조감독 생활을 시작한 이 어수룩한 작가 출신의 감독이 박광수 감독 이후 뜸했던 정공법의 ‘시네마 베리테’(진실의 영화)’를 구현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일상에 널려있는 소품들마다 의미와 상징을 부여하는 그의 솜씨는 ‘박하사탕’에 와서 그 직조술의 촘촘함이 단순한 장인의 경지를 넘어서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의 현실 안에서 우리의 현대사를 정리하는 작업을 이창동은 두 번째 작품인 ‘박하사탕’에서 해냈다. ‘박하사탕’에 ‘오발탄 이후 최초의 리얼리즘 영화’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은, 이제까지 우리 영화사에서 실종됐던 리얼리즘의 부활에 대한 반가움과 아쉬움을 동시에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작가적 역량이 큰 힘▼
물론 데뷔작 ‘초록 물고기’에서도 이러한 점은 이미 감지되었다. ‘초록물고기’는 깡패영화가 갖는 일종의 영웅담을 떨쳐버리고, 전례없는 폭력과 이로 인해 해체돼가는 가족을 통해 근대화의 문제를 성찰한다. 이런 성찰은 탄탄한 이야기 구조와 생생한 대사라는, 이창동 특유의 작가적 역량이 없었다면 이루기 힘든 것이기도 하다. 변변한 문장 실력없이 탐미적 영상에 승부를 거는 신인 감독들에게 이창동의 우직함은 일종의 경종이자 모범이기도 하다.
감독이기에 앞서 소설가인 이창동은 자신의 창작집 ‘용천뱅이’에서 용천뱅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미친 사람이란 뜻도 되고… 여하튼 성한 사람이나 보통 사람들과는 어울리지 못하는,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존재라고나 할까….’ ‘초록물고기’의 막동이도, ‘박하사탕’의 영호도 따지고 보면 용천뱅이다. 소설 속 주인공은 허공에 시선을 던진 채 천천히 말한다. 죽을 때까지 용천뱅이로 살지 않겠다고.
이창동은 용천뱅이를 노래함으로써 세상과 영화 안에 속해 있을 것이다. 오히려 우리를 더 잘 들여다 보게 하는 맑은 용천뱅이의 거울로서.
심영섭<영화평론가>
▼이창동 프로필▼
△54년 대구 출생
△80년 경북대 국문과 졸업
△8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 편부문 소설 ‘전리’ 당선
△92년 소설 ‘녹천에는 똥이 많다’ 한국일보 문학상 수상
△97년 영화 ‘초록물고기’로 대종상 특별상 각본상, 청룡 영화상 최우수작품상 감독상, 밴쿠버 국제영화제 용호상 수상
△99년 ‘박하사탕’ 각본,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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