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강우석-이강복/한국영화 이젠 質로 승부할때

  • 입력 2000년 1월 13일 19시 11분


‘한국영화’인가, ‘영화’인가. 한국영화 점유율이 40%에 육박하는 새밀레니엄의 벽두에 국내 메이저 영화사 대표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한국영화의 제작과 배급에서 최강자인 시네마서비스 강우석 대표와 신흥 메이저로 떠오른 제일제당의 이강복 CJ엔터테인먼트 본부장이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올해 시네마서비스는 300여억원을 조성해 한국영화 20편을 제작 배 급한다. 제일제당은 한국영화 10편의 제작에 투자하는 한편 드림웍스를 통해 외화 10편을 제작 배급한다.또 2004년까지 200개 스크린을 확보하기 위해 전국에 멀티플렉스 극장을 짓고 있다.

△강우석=올해는 장르영화의 개발이 목표다. 뜻도 애매한 ‘한국형’ 영화 말고 ‘스크림’ 1편처럼 장르에 충실한 공포영화, 동남아 시장에서도 승산있는 액션영화를 만들겠다. ‘시네마서비스의 영화’하면 신뢰가 가는 브랜드 이미지를 굳히는 것도 올해 이루고 싶은 일이다.

△이강복=한국영화 산업은 다른 산업에 비해 수요가 적다. 세계 곳곳에 멀티플렉스 체인을 짓는 호주 빌리지 로드쇼가 국내 시장을 조사한 결과 최적의 환경을 갖춘 멀티플렉스가 주거지 근처에 생기면 최고 2.5배까지 관객수가 증가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CGV 극장 증설로 수요를 늘리는 게 올해의 목표다.

△강=올해도 한국영화 강세는 계속되겠지만 이제 질적 승부를 생각할 때다. 지난해 한국영화 흥행작 중 5∼10년 뒤에도 ‘작품’으로 남을 영화가 과연 있겠는가. 시네마서비스에서 흥행만을 염두에 두고 만든 영화는 다 잘 되고, 명분을 앞세운 영화들은 실패해 혼란스럽다. 그러나 적자를 5∼6억원 선에서만 막을 수 있다면 ‘초록물고기’같은 작품을 1년에 한 두 편은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한국영화도 다양해지지 않으면 미래가 어둡다. 영화 일을 처음 시작할 때 이상했던 건, ‘왜 한국영화는 둘이 있으면 안되는가’ 하는 것이었다. 시장을 키워 ‘한국영화’끼리 싸우는 것이 아니라 ‘영화’로 경쟁하고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강=영화가 비슷하면 하나만 살지만, 다양하면 공존이 가능해진다. 영화의 힘으로 이기고 지는 거다. 10억원 벌면 족할 영화로 15억원을 버는 건 배급의 힘이지만, 망하는 영화를 흥하게 할 순 없다. 영화의 국적이나 배급사에 따라 흥행이 좌우되는 일은 이제 있을 수 없다.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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