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에서는 검찰의 이번 조치로 국내외에서 제작된 수 백 편의 영화에 대한 등급판정을 통해 제작자나 관객에게 ‘영화의 가이드라인’ 역할을 해온 등급위의 공신력과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는 반응이다.
영상물 등급위의 한 위원은 “‘거짓말’이 두차례 등급보류 판정을 받았을 때는 일부 언론과 영화인들이 등급위를 ‘창작의 자유’를 가로막는 주범으로 몰았다”면서 “고교생이 주인공임을 알 수 있는 장면 등 문제부분 17분 정도가 삭제된 작품에 등급을 주자 이번에는 일부 시민단체와 검찰이 우리를 ‘범죄자’ 취급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경찰서 범죄자 취급" 토로▼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위원을 대통령이 위촉하는 법적 기구이다. 공연법 제5장 18조에는 ‘예술원 청소년보호위 영화진흥위 대한변협 방송위 등이 전문경험이 있는 사람 중 15인을 예술원 회장에게 추천하고, 대통령은 다시 예술원 회장의 추천을 받아 이들을 위원으로 위촉해 위원회가 구성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등급위가 지난해 4월 순수민간자율기구를 표방하며 출범했지만 사실상 법률로 뒷받침되는 공적 기구임을 나타내주는 부분이다.
결국 같은 ‘법적 기관’이면서 한쪽은 ‘법에 따라’ 상영을 허용하고 다른 한쪽도 ‘법에 따라’ 사실상 상영을 막는 방향으로 수사하는 사태가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점은 단순히 ‘거짓말’이 외설이냐의 문제를 떠나 창작 표현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침해할 소지가 크다.
▼표현의 자유 침해 소지 커▼
등급위의 강한섭위원(서울예술대 교수)는 “어떤 면에서 등급위는 그동안 ‘창작의 자유’를 우선시하는 영화인과 사회 보수층 사이에서 완충 역할을 했지만 검찰이 등급위원을 소환하는 상황이라면 그 기능은 무의미하다”면서 “사회적 분위기가 동일하지 않지만 미국에서 가급적 창작물에 대해 사법적 판단을 내리지 않는 이유를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현장의 한 영화감독은 “이제는 영화를 만들려면 ‘형법’을 먼저 공부해야 할 상황이 됐다”면서 “시민단체의 고발이 있을 때마다 검찰에 출두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더구나 공연법에 규정된 역할을 한 등급위원을 쉽게 소환하고 또 일단 구체적 혐의가 없는 상황에서 ‘외압과 로비’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검찰 신중히 대처해야▼
‘거짓말’이 음란물이란 이유로 고발된 만큼 감독이나 제작사 대표에 대한 검찰의 수사는 일단 불가피하다는 게 법조계의 반응. 그러나 법무법인 태평양의 전병하 변호사는 “‘거짓말’ 사태는 형법과 공연법이 마찰을 빚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검찰의 신중한 대처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김갑식기자>gs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