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나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하지만 이 광고가 방송을 타기까지는 적잖은 ‘시련’을 겪어야 했다. 방송위원회 심의에서 ‘자전거가 1차선을 달린다’는 지적을 받은 것. 제작진은 광고 장면 가운데 ‘노란 차선’을 ‘하얀 차선’으로 편집한 뒤 재심의를 요청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성인 두 사람이 한 자전거를 타는 것은 현행법에 저촉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결국 이 광고는 ‘본 장면은 광고를 위해 연출된 것입니다. 도로교통법상 자전거는 성인 두 사람이 탈 수 없습니다’라는 자막을 달고서야 방영이 허가됐다.
방송광고 심의 규정이 현실과 거리가 멀다는 지적은 이미 오래전부터 제기되온 문제. 광고계는 3월 새 방송법 시행을 앞두고 “이번 기회에 ‘구시대적인’ 심의 규정을 완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심의 사례〓한 휴대전화 광고. 제작진은 분위기를 돋구기 위해 팝음악을 배경으로 깔았다. 하지만 “‘영어 노래’가 너무 오래 나온다”는 방송위원회의 지적 때문에 가사를 지우고 음악만 사용했다.
남자가 웃통을 벗고 철봉을 하는 모습을 담은 광고. 겨드랑이 털이 ‘혐오감’을 준다는 이유로 심의에 걸리는 바람에 제작진은 컴퓨터로 털을 지우는 작업을 해야 했다.
‘여자 모델의 가슴이 보일 듯 말듯하게 촬영됐다’는 지적을 받은 한 광고는 편집으로는 도저히 해결되지 않아 아예 재촬영을 했다. 최근에는 정보통신 광고가 늘면서 용어가 가장 큰 ‘시빗거리’로 떠올랐다. 광고대행사의 한 실무자는 “컴퓨터 관련 광고인데 ‘엔터키’라는 용어를 썼다가 ‘우리말로 풀어서 쓰라’며 불가판정을 받은 적이 있다”고 전했다. 광고주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심의를 신청한 3만8000건 가운데 절반이 넘는 60% 가량이 한 번에 통과되지 못하고 원본을 수정한 뒤에야 방영을 허가받았다.
▽광고계 주장〓한국광고단체연합회는 25일 의견서를 내고 “방송광고의 사전심의는 민간기구인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에 위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 방송법에 ‘방송광고 사전심의를 민간기구나 단체에 위탁한다’고 명시돼 있는 점을 노려 적극적인 행동을 전개하는 것.
연합회는 “광고자율심의기구는 광고 전문가 뿐 아니라 시민단체 학계 법조계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심의위원으로 포진해 있기 때문에 객관적이고 공정한 심의를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전망〓심의권이 어디로 넘어갈 지는 아직 전망하기 어려운 상황. 광고자율심의기구 뿐 아니라 시민단체도 사전심의 권한을 넘겨달라고 나섰다. 현재의 방송위원회 소속 광고심의위원회가 민간기구로 분리돼 심의를 계속할 가능성도 있다.심의권이 어디로 가든 심의규정이 다소 현실적으로 변할 것이라는 전망은 방송위원회나 광고업계 모두 일치한다. 방송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소비자를 보호한다는 원칙은 유지하지만 시대가 변한 만큼 잣대도 변할 수 밖에 없을 것” 이라고 말했다. 한편 사전심의를 사후심의로 돌리자는 광고계 일부의 주장은 시민단체 등의 반대여론 때문에 받아들여지지 않을 공산이 크다.
<금동근기자>go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