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같은 시간대의 MBC ‘허준’이 60%를 넘는 기록적인 시청률을 올리며 ‘철옹성’을 구축 하고 있는 것이 ‘원인’(遠因) 이겠지만, 최근 KBS 월화드라마 중 최대의 물량 투입과 타 방송사의 트렌디 드라마에 못지 않은 신세대 연기자들을 확보한 ‘성난…’의 부진은 KBS로서는 적잖은 충격일 듯하다.
‘성난…’을 통해 본 KBS 월화드라마의 가장 큰 문제는 타깃 시청자 층을 설정하지 못한데다 플롯의 방향성이 분명치 않아 ‘정체성의 위기’를 드러내고 있는 점.
이제까지 7회(전체 방송분의 25%)가 나가면서 ‘성난…’은 “KBS 월화드라마에서 그동안 보여주지 못했던 액션물로 시청자를 유인해보자”는 강박관념이 드라마를 관통하고 있다.
‘공영방송’ KBS로서는 눈치봐가며 마련한 액션신에 큰 기대를 하고 있는 것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거대한 이야기 줄기에 액션신을 녹여내기보다는 이야기가 액션신을 위한 악세서리로 전락하고 있어 주객이 전도됐다.
당초 ‘성난…’의 플롯은 서로 다른 길(깡패와 경찰)을 걷게되는 두 형제의 좌절과 번뇌를 그리며 시원한 액션을 양념처럼 얹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까지 ‘성난…’에는 “다 죽여버리겠다”는 식의 홍콩 영화 풍 ‘무념(無念) 액션’만이 판치고 있다. 그러다보니 주연급들의 썩 괜찮은 극 중 캐릭터는 싸움박질에 묻혀버렸다.
주인공이자 깡패인 동훈 역의 주진모 표정은 카리스마 대신 ‘전투 준비태세’ 형이다. 경찰인 동생 동진 역의 이민우는 사법고시 준비하다 경찰에 투신한 데 따른 고민은 깡패 잡는 일에 가려졌다.
‘거짓말’ ‘학교’ 등 1998∼1999년 KBS 월화드라마의 화제작은 ‘공영방송’이라는 부담감을 기발한 아이템과 캐릭터에 깊이 있는 관찰로 극복해내곤 했다. ‘성난…’의 재기 여부는 얼마나 빨리 성공한 전작들의 작법을 차분히 곱씹어보는냐에 달린 듯 하다.
<이승헌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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