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 존]한국영화 잇따라 흥행 참패

  • 입력 2000년 3월 31일 11시 56분


한국영화에 비상이 걸렸다. 올들어 개봉된 작품들이 잇따라 흥행에서 고배를 마시고 있기 때문. 일부에서는 벌써부터 한국영화 거품론, 반짝 경기론이 나오고 있을 정도다. 지난 해 우리영화는 객석점유율 40%선에 다가서며 가파른 상승세를 보인 바 있다.

3월까지 개봉된 영화는 총 9편. <주노명 베이커리>를 시작으로 <춘향뎐>과 <반칙왕>, <천일동안>, <플란더스의 개>, 그리고 <신혼여행>과 <산책>, <구멍>, <진실게임> 등이다. 이 가운데 흥행에서 성공한 작품은 <반칙왕> 단 한편. 지난 2월 4일 개봉된 <반칙왕>은 서울 80만, 전국 200만 가까운 관객을 모으며 8주 째 롱런하고 있다. 다소 혼란스런 국내 사회정치상황이 이 영화에 대한 역반응을 이끌어 낸 것으로 분석된다. 기대를 모았던 <춘향뎐>은 전국 30만 관객에 그쳐 간신히 체면만을 유지하고 간판을 내렸다. <춘향뎐>의 제작비는 약 30억원선.

이들 두 작품을 제외하고 다른 작품들은 서울에서 평균 3만 이상을 넘기지 못하는 기현상을 보였다. 그나마 3만을 넘은 작품은 <주노명 베이커리>와 <플란더스의 개>. 각각 3만 7천과 4만 2천명의 관객을 모았다. <주노명>의 경우 최민수 황신혜, 이미연 등 인기스타가 동원됐음에도 불구하고 성적이 극히 저조했던 예. 이른바 스타시스템에 대한 재고가 요구되고 있음을 보여줬다는 평이다. <플란더스의 개>는 히트작 제조기라는 영화사 우노필름의 작품치고 '바닥 장세'를 친 작품이다. 우노필름은 <플란더스의 개> 이전 작품인 <행복한 장의사>로도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신혼여행>과 <천일동안>, <산책>, <구멍>, <진실게임> 등의 작품은 관객집계를 발표하는 것이 다소 민망할 정도다. 대부분 서울에서 1만명 수준에 그쳤다. 지난 해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에 올라 평단과 언론의 주목을 끌었던 김국형감독의 <구멍>의 경우 서울 관객 5천명선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98년 <편지>로 흥행감독 대열에 올랐던 이정국 감독 역시 386세대 관객을 겨냥했다는 <산책>을 만들었지만 흥행 결과는 감독의 생각이 다분히 시대착오적이었음을 드러냈을 뿐이다. 서울 관객은 1만.

한국영화들의 잇단 흥행 참패에 대해 영화 칼럼니스트 이지훈씨(33)는 일단 "대부분 많은 관객을 기대할 수 없는 소품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이유로 이씨는 "인터넷과 벤처 등 우리사회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것에 비해 지금까지 개봉된 작품들은 그러한 시대상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점"을 꼽고 있다. 한마디로 디지털 관객 세대와 아날로그 영화문화가 극장가에서 충돌하고 있다는 것. 세태를 적극 반영한 <반칙왕>이 흥행몰이를 하고 있는 것은 이씨의 그러한 분석을 뒷받침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아직 섣부른 예상은 금물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지난 해 역시 국내영화는 상반기 동안 제작편수나 흥행 모두 미미한 실적에 머물다가 여름 시즌 이후 인기가 급반등했기 때문이다. 올해 역시 강제규필름이 제작중인 대작 <단적비연수>나 시네마서비스가 배급하는 <비천무> 등이 개봉되면 한국영화 분위기가 뒤바뀔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 작품이 극장가에 나오기 전까지 국내영화의 침체기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오동진 (FILM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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