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만나기가 힘들다. 어렵사리 약속을 잡아도 시간에 쫓긴다.
올 2월 첫 선을 보인 MBC 시트콤 ‘세친구’로 뜬 후 그는 ‘전파견문록’(MBC), ‘슈퍼TV 일요일은 즐거워’(KBS)에 출연중이다. 한달 전부터는 ‘윤다훈의 라디오섹션’의 DJ를 맡고 있다. 최근 한달 사이에 찍은 CF만 해도 7개. 그가 요즘 얼마나 바쁜지는 그를 만나자마자 금방 알 수 있었다.
“어제도 4시간밖에 못 잤어요.”
커다란 두 눈에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사진 촬영이 시작되자 금세 다양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TV에서는 통통해 보였는데 실제는 보기 좋은 정도. 키가 179.4㎝라고 주장했지만 그 보다는 작아 보였다.
“아무리 몸이 피곤해도 무명시절에 마음 고생했던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죠.”
윤다훈의 무명시절은 꽤 길다. 연기는 올해가 17년째다. 그런 탓인지 나이 밝히길 꺼렸다. “그냥 30대 중반에 들어섰다고만 하면 안될까요.”
어릴적부터 막연히 방송을 동경해왔던 그는 84년 무작정 매일 MBC앞에서 서성댔다. 그렇게 석달이 지나자 담배도 나눠 피게 된 수위아저씨들이 정문을 통과시켜 줬다. 이번엔 MBC 로비에서 서성댔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무조건 허리숙여 인사했다. 그렇게 석달이 또 흐르자 그는 마침내 ‘데뷔’할 수 있었다. 드라마 ‘3840유격대’의 엑스트라였다.
그 후 그는 ‘모여라 꿈동산’ ‘베스트셀러극장’을 비롯해 50여편에 출연했다. 그러나 얼굴이 확실히 알려진 것은 96년 ‘목욕탕집 남자들’의 이몽룡역을 맡으면서부터.
한동안 다른 얘기를 하다가 슬쩍, 엑스트라로 데뷔한 게 몇 살 때였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눈치빠르게 질문의 뜻을 알아차리고 “사실, 저 우리 나이로 서른일곱이에요”라고 말했다.
나이에 비해 그는 정말 젊어보였다. 그를 일약 스타로 만든 ‘세친구’에서 그는 서른살로 나온다. 함께 출연하는 박상면, 정웅인보다 그가 나이가 훨씬 많지만 오히려 어려 보일 정도다.
그가 맡은 ‘윤다훈’(세친구의 주인공은 모두 실명으로 등장한다)은 고교 동창 집에 얹혀사는 넉살좋은 헬스클럽 매니저. 예쁜 여자만 보면 정신 못차리고 ‘껄떡대는’ 바람둥이역이지만 결코 밉지 않은 ‘다훈’을 그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소화한다.
그러나 인터뷰 도중에 그에게서는 극중 ‘다훈’의 철없는 모습을 찾기 어려웠다. 시종 진지했고 자신감이 넘쳤다. 혹시나 해서 물어보니 역시나 2남 1녀 중 장남이었다.
“극중 다훈이와 비슷한 부분도 많지만 여자와 관련된 부분은 절대 아니에요. 저는 남자들과 어울려 술마시는 걸 훨씬 좋아하거든요.”
그래서일까. 그는 아직 미혼이다.
자신의 장점으로 그는 순발력을 꼽았다. 실제로 그는 ‘전파견문록’ 출연진 중 퀴즈를 가장 많이 맞히고, 아이들로부터 정답도 요령껏 이끌어낸다. ‘목욕탕…’ 이후 별반 주목받지 못했던 그가 ‘세친구’에서 뜨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애드리브에 특히 강한 그는 세친구처럼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쳐 보일 ‘멍석’이 깔리기만을 기다려 왔는지도 모른다.
인터뷰가 끝나자 KBS로 간단다. 무슨 촬영이냐고 묻자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KBS의 나이 드신 PD 한분이 출연제의를 해주셨는데 도저히 시간이 안되거든요. 어른께 전화로 못하겠다고 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직접 뵙고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려고요.”
어쩌면, 윤다훈이 뒤늦게 떴지만 인기를 계속 누리고 있는 또 다른 이유일지도 모른다.
<강수진기자>sj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