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존]사랑얘기도 세번이면 지겹다 '크로우'

  • 입력 2000년 6월 27일 11시 16분


"이젠 좀 지겹다". 사랑과 배신, 부활과 복수의 얘기도 한 두번일 때 흥미가 있다. 같은 얘기로 세번이나 울궈 먹기란 보는 사람들까지 조금 낯뜨겁게 한다. 이 영화는 이번으로 세번째다. 94년에 한번, 96년에 한번, 그리고 98년에 만들어졌다.

이번에 소개된 작품은 98년작으로 완결편이라 이름 붙여졌지만 그것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크로우> 속편의 특징은 이야기 구조가 전편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데 있다. 다른 작품들은 그래도 인물이나 상황에 변화를 주는데 반해 이 영화는 출연진들만 교체할 뿐 인물의 성격이나 갈등구조, 상황 설정이 거의 비슷하다.

애인 로렌을 잔혹하게 살해한 누명을 쓰고 전기의자에 앉아 사형에 처해진 주인공 알렉스는 복수를 위해 부활한다. 로렌을 살해한 '미스터리 맨'을 추적하던 중 알렉스는 이 '미스터리 맨'보다 더욱 미스터리한 사건에 접한다. 로렌의 동생 에린의 도움을 빌어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던 알렉스는 로렌의 끔찍한 죽음에 그녀의 아버지가 개입됐다는 사실을 알고 경악한다.

기독교 문화권에서 까마귀란, 사람의 눈을 파먹는 새다. 마음의 눈까지 멀게 해서 죄를 저지르게 하는 악마로 간주되는 것이다. 이 새는 종종 고독을 상징하기도 하는데 악은 선보다 소수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악의 상징으로 간주되는 이 까마귀를 선을 위한 복수의 이미지로 뒤집음으로써 기존 가치에 대한 역동적인 반란을 꾀한다.

이 영화의 모태는 70년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동명 원작만화. 죽음으로부터의 부활이라는 만화적 상상력과 오토바이 펑크족이나 헤비 메탈같은 하위문화의 캐릭터들을 대거 동원하고 신세대 젊은 감각에 맞는 빠른 비트의 MTV적 화면을 고딕풍의 음산한 분위기로 포장해 젊은 세대들의 감성을 포획하려 한다. 여기에 과도한 폭력과 자극적인 섹스신을 덧칠한다.

'구원의 손길'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번 작품에서도 1,2편의 컨벤션은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위선과 협잡, 배신이 난무하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결국 더욱더 비정한 악한이 될 수밖에 없음을 충동질하는 이 영화는 그렇기 때문에 세상이 선악의 경계가 모호한 상태로 운영된다는 사실을 감지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에게는 극히 위해한 작품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상당부분 청소년적 정서에 어프로치를 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다.

영화가 볼만하려면 새로운 맛이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크로우 완결편 - 구원의 손길>은 재탕 삼탕의 재방송 TV외화의 대열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못하다. 스크린을 여러 대 갖다 놓고 마치 TV 채널을 돌리듯 재핑(Zapping)을 할 수 있다면 그렇게 부담스러운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어디 그럴 수 있는가. 방법은 잠깐의 졸음으로 피곤한 눈을 달래주면 된다.

<오동진(ohdjin@film2.co.kr) 기자>

기사 제공: FILM2.0 www.film2.co.kr
Copyright: Media2.0 Inc. All Rights Reserved.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