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고 난 뒤 ‘예더봉’이 미얀마어로 ‘봉기’를 뜻한다는 것 뿐 아니라 한국에 미얀마 민주동맹(NLD) 지부가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이 다큐멘터리는 미얀마 민주항쟁 11주년을 기념해 NLD 한국지부 소속 미얀마 사람들이 지난해 서울에서 닷새동안 벌인 시위를 담은 영화다. ‘민주 봉기’라는 제목은 거창하지만 영화를 보면 제목과 전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이들의 시위는 초라하다.
▼5일간의 서울시위 담은 다큐영화▼
처음에 궁금했던 건 시위 자체보다 이들이 왜 불법체류를 감수해가며 해외에서 이 고생을 하는지였다. 18세에 산업연수생 자격으로 한국에 와 지금 24세인 청년 모조는 왜 공부를 하고 싶어 하면서도 이곳에 머물러 있는 걸까. 한국여성과 결혼한 젊은 가장 샤린은 불법체류자 신분 때문에 아이를 미혼모의 아이로 키울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왜 감당하며 사는 걸까.
그러나 영화를 보면 “왜?”라는 질문이 이들에게 얼마나 가당치 않은지를 금방 알게 된다. 1980년 광주를 기억한다면, 공부하고 직장에 다니며 따분한 일상이나마 영위할 자유조차 빼앗기고 해외로 떠돌 수밖에 없는 이들의 암울한 삶에 고개가 끄덕거려진다. NLD 소속원들에게 특별비자를 발급해 정치활동의 자유를 인정해주고 난민신청도 일부 받아들인 일본과 달리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한국에서 이들의 분투는 배로 힘겨울 수 밖에 없다.
▼눈물겨운 풍경에 소박한 감동▼
언제부턴가 내겐 억눌린 사람들의 고난의 기록을 보며 마음이 움직일 때마다 “앓아누운 사람들 사이에 따라 누워 신음소리만 흉내내는 것”에 불과하다고 스스로를 비웃는 나쁜 버릇이 있다. 일찍 세상을 뜬 문화평론가 채광석이 진지한 자기 성찰을 담아 쓴 표현을 나는 몸에 밴 냉소와 회의의 근거로 내 마음대로 차용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비오는 날, 어떤 배우도 흉내낼 수 없는 절박한 표정을 한 미얀마 사람들이 소음에 파묻혀 잘 들리지도 않는 주장을 열심히 외치는 스산하고 눈물겨운 풍경을 보면서는 쉽게 비웃어지지 않는 마음의 동요가 한동안 진정되지 않았다. 잘 만든 다큐멘터리가 간직한 생생한 진실의 힘, 그것이 전달하는 소박한 감동은 어느 극영화도 도저히 따라잡지 못한다.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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